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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이명선 노신잡잠문선집 등하만필(분)

by 역달5 2022.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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燈下漫筆[등하만필]

一[일].

언젠가 民國[민국] 23年頃[년경]이었겠는데, 北京[북경]의 몇몇 國立銀行 [국립은행]의 紙幣[지폐]가 나날이 信用[신용]을 얻어서 참으로 旭日昇天之 勢[욱일승천지세]였다. 從來[종래] 現銀[현은]을 固執[고집]하던 시골띠기 들까지도 이것이 便利[편리]하고 確實[확실]하다는 것을 알고 서슴지 않고 이것으로 去來[거래]하며 使用[사용]하였다고 한다. 多少[다소]나마 개명한 사람이면 반드시 ‘特殊知識階級’[특수지식계급]이 아니라도, 벌서 그 무 겁고 부패가 큰 現銀[현은]을 호주머니에다가 넣어 쓸데없이 苦生[고생]을 하지 않게 되었다. 아마 銀貨[은화]에 對[대]하여 特別[특별]한 趣味[취미] 와 愛着[애착]을 가진 몇몇 사람을 除外[제외]하고는 모든 사람이 다 紙幣 [지폐]를 가젔으며, 그것도 本國[본국]의 것을 가젔었을 것이다. 그러나 可 惜[가석]하게도 얼마 後[후]에 實然[실연] 적지않은 打擊[타격]을 받게 되 었다.

그것은 袁世凱[원세개]가 皇帝[황제]가 되려고 하던 해의 일로, 蔡松坡[채 송파] 先生[선생]이 北京[북경]을 버서나 雲南[운남]에 가서 義兵[의병]을 이르키었다. 그 때에 받은 影響[영향]의 하나가 中國[중국], 交通[교통]의 兩銀行[양은행]의 兌換[태환]이 停止[정지]된 일이다. 兌換[태환]은 停止 [정지]되었으나 政府[정부]는 商人[상인]들에게 從前[종전]과 같이 通用[통 용]하기를 强要[강요]할 威力[위력]은 아직도 가지고 있었다. 商人[상인]들 도 또 商人[상인]의 本領[본령]을 發揮[발휘]하여, 안받는다고는 하지 않고 잔돈이 없다고 하였다. 假令[가령] 數十[수십] 數百[수백]의 紙幣[지폐]를 가지고 物件[물건]을 살 때에는 어떻게 하였는지 알 수 없으나, 그저 붓 한 자루, 담배 한 갑을 사는데 一元[일원]짜리 紙幣[지폐]를 줄 수는 없지 않 은가? 이것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을뿐더러 紙幣[지폐]도 또 그렇게 많지 않었다. 그러면 銅錢[동전]으로 바꾸겠다고 多少[다소] 싸게 말해보나 모다 銅錢[동전]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親戚[친척]이나 親舊[친구]한테 現 銀[현은]을 꾸러 가보아도 있을 턱이 없다. 그래서 格[격]을 나추어 愛國主 義[애국주의]에 拘碍[구애]되지 않고 外國銀行[외국은행]의 紙幣[지폐]를 求[구]하려고 해보았다. 그러나 外國銀行[외국은행]의 紙幣[지폐]는 이 때 에도 現銀[현은]과 마찬가지로, 거기서 紙幣[지폐]를 꾸면 진짜 銀貨[은화] 를 꾼 것으로 되었다.

나의 記憶[기억]으로는 그 때 나의 호주머니에는 아직도 三四十元[삼사십 원]의 中國[중국], 交通[교통]의 兩銀行[양은행]의 紙幣[지폐]가 들어 있었 는데, 별안간 가난뱅이가 되여 끼니를 이찌 못하게 되어 매우 唐慌[당황]하 였다. 쏘聯革命[련혁명] 以後[이후] 루 ― 불의 紙幣[지폐]를 가지고 있던 富者[부자]들의 心情[심정]이 똑 이러하였을 것이다. 그저 좀더 深刻[심각] 하고 規模[규모]가 컸을 뿐이었을 것이다. 나는 할 수 없이 紙幣[지폐]를 割引[할인]하여 現銀[현은]으로 바꿀 수 없나 하고 探知[탐지]해 보았으나, 장은 스지 안는다는 이야기였다. 多幸[다행]하게 그여히 몰래 장이 섰다.

六割[육할] 얼마라는 것이다. 나는 귀가 번적 띠어서 半[반]을 파러 치웠 다. 얼마 안있어서 七割[칠할]로 올랐다. 나는 더욱 반가워서 全部[전부] 現銀[현은]으로 바꾸어 호주머니가 무직하게 집어 넣었더니, 그것이 나의 生命[생명]의 斤量[근량]인 것만 같었다. 平常時[평상시]같으면 돈 바꾸는 데서 銅錢[동전] 한 잎을 덜 주어도 나는 絶對[절대]로 그저 있지 않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한무끔의 現銀[현은]을 호주머니가 뿌둣하게 집어 넣고 저으 기 安心[안심]이 되어 기뻐했을 때, 무뜩 딴 생각이 들었다. 卽[즉] 우리는 極[극]히 容易[용이]하게 奴隸[노예]로 變[변]할 수 있으며, 또 한 번 變 [변]해 버리면 그것을 기뻐한다는 생각이다.

假令[가령] 어떠 暴力[폭력]이, ‘人間[인간]을 人間[인간]으로 待接[대 접]하지 않고’, 人間[인간]의 待接[대접]을 안할 뿐만 아니라 牛馬[우마] 만치도 여기지 않고, 개똥만치도 여기지 않게 되어, 人間[인간]이 牛馬[우 마]를 부러워하고, ‘亂世[난세]의 人民[인민]은 太平盛代[태평성대]의 개 만도 못하다’는 嘆息[탄식]이 나오게쯤 되어서, 그런 然後[연후]에 비로소 그들을 牛馬[우마]와 比等[비등]하게 待接[대접]하면, 똑 元代[원대]의 法 律[법률]이 남의 奴隸[노예]를 죽이면 소 한 마리로써 賠償[배상]하게 하여 모두들 그것에 滿足[만족]하고 太平盛世[태평성세]를 讚頌[찬송]하던 것과 똑같이 滿足[만족]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人間待接[인간대접]은 못받 지만 어쨌든 牛馬[우마]와는 比等[비등]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반드시 欽定二十四史[흠정이십사사]를 拜讀[배독]하지 않어도 좋 고, 或[혹]은 硏究室[연구실]에 들어가서 精神文明[정신문명]의 高遠[고원] 함을 探究[탐구]하지 않어도 좋다. 어린아이들이 읽고 있는 鑑略[감략]을 暫間[잠간] 들추어 보던지. ― 그것도 귀찮으면 歷代[역대] 紀元編[기원편] 을 보라. 그것만으로도 ‘三千餘年[삼천여년]의 古國[고국]’이라는 中國 [중국]이 歷史上[역사상]에서 옥신각신한 것이 하나의 作亂[작란]에 不過 [불과]하였다는 것을 알리라. 그러나 요새 編纂[편찬]된 所謂[소위] ‘歷史 敎科書[역사교과서]’같은 데는 도리혀 別[별]로 分明[분명]치 않고, 그저 다만 우리들은 이 때까지 퍽 幸福[행복]이었다고 하는 것 같다.

그러나 實際[실제]로는, 中國人[중국인]은 이 때까지 人間[인간]의 價値 [가치]를 戰取[전취]한 일이 없고, 찍해야 奴隸[노예]가 된 데 不過[불과] 하고, 現在[현재]도 그러하다. 그러나 奴隸[노예]만도 못한 時期[시기]가 적지 않었다. 中國[중국]의 百姓[백성]은 中立[중립]이라 戰時[전시]에는 제 自身[자신]으로 제가 어느 便[편]에 屬[속]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또 어 느 便[편]이고 다 屬[속]하는가 보다. 强盜[강도]가 오면 官[관]에 屬[속] 함인지 勿論[물론] 殺戮[살륙] 略奪[약탈] 당한다. 官兵[관병]이 오면 제 便[편]이겠는데도 不拘[불구]하고 또 殺戮[살륙] 略奪[약탈] 당하지 않으면 안된다. 마치 强盜便[강도편]에나 屬[속]하는 줄 아는 모양이다. 이러한 때 에 百姓[백성]은 한 사람의 뚜렷한 君主[군주]가 있어, 그들을 百姓[백성] 으로 삼어 주기를 希望[희망]한다. ― 그것도 과만하면 그들을 牛馬[우마] 로 삼어 제 멋대로 풀을 뜯어 먹게하고, 그저 다만 그들이 어느 쪽으로 가 면 좋은가를 決定[결정]해 주기를 希望[희망]한다.

萬若[만약] 참으로 그들을 爲[위]하여 決定[결정]해 줄 수만 있다면, 어떠 한 奴隸[노예]의 規則[규칙]이 定[정]해지든지 勿論[물론] ‘皇恩[황은]의 浩蕩[호탕]’한 것이다. 可惜[가석]하게도 暫時[잠시] 동안도 이것을 定 [정]해주는 이가 없던 時期[시기]가 각금 있었다. 그 顯著[현저]한 것을 들 면 五胡十六國[오호십육국]의 時期[시기], 黃巢[황소]의 時期[시기], 五代 [오대]의 時期[시기], 宋末[송말]과 元末[원말]의 時期[시기]인데, 그들은 으레이 있는 夫役[부역]과 租稅[조세] 以外[이외]에, 모다 또 意外[의외]의 災難[재난]을 입었다. 張獻忠[장헌충]의 行悖[행패]에 이르러서는 너무나 怪狀罔測[괴상망측]하다. 夫役[부역]과 租稅[조세]를 하지 않어도 죽이고, 夫役[부역]과 租稅[조세]를 하여도 죽인다. 그를 敵[적]으로 하여도 죽이 고, 降服[항복]하여도 죽인다. 奴隸[노예]의 規則[규칙]이 餘地[여지] 없이 粉粹[분쇄]되고 말었다. 이러한 때에는 百姓[백성]은 한사람의 새로운 君主 [군주]가 나타나서 多少[다소]나마 그들의 奴隸[노예]의 規則[규칙]을 顧慮 [고려]해 주고, 在來[재래]의 것이든 새로 制定[제정]한 것이든간에, 要 [요]컨대 一種[일종]의 規則[규칙]이 있어 그들을 奴隸[노예]의 軌道[궤도] 위에 올려 놓아 주기를 希望[희망]한다.

‘時日[시일]을 어찌 노칠가보냐. 나는 너와 함께 죽으리라!’ 하는 것은 激憤[격분]하여 吐[토]한 말뿐이고, 實行[실행]을 決心[결심]하는 者[자]는 別[별]로 없다. 實際[실제]로는 群盜[군도]가 여기저기 이러나 紛亂[분란] 을 거듭한 끝에, 한 사람의 比較的[비교적] 强[강]한 者[자], 或[혹]은 比 較的[비교적] 聰明[총명]한 者[자], 或[혹]은 比較的[비교적] 狡滑[교활]한 者[자], 或[혹]은 外來民族[외래민족]의 人物[인물]이 나타나서, 어느 程度 [정도]가 秩序[질서]가 있게 하여 天下[천하]를 收拾[수습]한다. 그리고 規 則[규칙]을 制定[제정]하여, 어떻게 夫役[부역]하느냐, 어떻게 租稅[조세] 를 바치느냐, 어떻게 절을 하느냐, 어떻게 聖代[성대]를 讚頌[찬송]하느냐 를 決定[결정]한다. 그리고 이 規則[규칙]이라는 것은 現在[현재]처럼 朝三 暮四[조삼모사]로 變更[변경]되는 것은 아니다. 그제서 ‘萬百姓[만백성]이 歡聲[환성]을 올린다.’ 여기 딱 맞는 用語[용어]를 쓴다면 ‘天下太平[천 하태평]’이다.

발러바추기 잘하는 歷史[역사]를 꾸밀 때 ‘漢族發祥時代[한족발상시대]’ ‘漢族發達時代[한족발달시대]’ ‘漢族中興時代[한족중흥시대]’같은 그럴 듯한 題目[제목]을 내세워 본대야 好意[호의]는 참으로 感謝[감사]하나 表 現[표현]이 너머 婉曲[완곡]하다. 좀더 率直[솔직]한 表現[표현]이 여기 있 다 ―.

一[일]. 奴隸[노예]가 되려다가 못된 時代[시대]

二[이]. 暫時[잠시] 平穩[평온]하게 奴隸[노예]가 된 時代[시대] 이 一種[일종]의 循環[순환]이 또 ‘先儒[선유]’의 이른바 ‘一治一亂[일 치일란]’이다. 亂[난]을 이르킨 人物[인물]은 後日[후일]의 ‘臣民[신 민]’으로서 보면 ‘君主[군주]’를 위하여 길을 띠워 준 者[자]로, 그러므 로 ‘聖天子[성천자]를 爲[위]하여 驅除[구제]하였는 것이다.'

現在[현재]는 어떠한 時代[시대]로 들어온 것인지 나도 잘 모른다. 그러나 國學者[국학자]의 國粹崇拜[국수숭배], 文學者[문학자]의 固有文明[고유문 명]의 讚美[찬미], 道學者[도학자]의 復古[복고]에 對[대]한 熱誠[열성]으 로 보면, 現狀[현상]에는 모다 不滿[불만]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는 結局[결국] 어떠한 길을 것고 있는가? 百姓[백성]은 한 번 그 까닭 모를 戰爭[전쟁]에 當面[당면]하면, 多少[다소] 富有[부유]한 者[자]는 租界[조 계]로 옴겨가고, 婦女子[부녀자]들은 敎會堂[교회당]으로 避難[피난]한다.

그 理由[이유]는 거기가 比較的[비교적] ‘平穩[평온]’하여, 얼마동안은 奴隸[노예]가 되려다가 못된다는 事態[사태]에는 빠지지 않기 때문이다. 要 [요]컨대 復古主義者[복고주의자]도, 避難民[피난민]도, 愚者[우자]든 賢者 [현자]든간에 모다 지난 三百年前[삼백년전]의 太平盛世[태평성세]를, 卽 [즉] ‘暫時[잠시] 平穩[평온]하게 奴隸[노예]가 된 時代[시대]’를 追慕 [추모]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우리들도 古人[고인]과 같이 ‘예전에 이미 있었다’는 時代[시대] 에 滿足[만족]할 것인가? 모다 復古主義者[복고주의자]와 같이 現在[현재] 에 不滿[불만]이며, 三百年前[삼백년전]의 太平盛世[태평성세]를 追慕[추 모]할 것인가?

勿論[물론] 現在[현재]에는 不滿[불만]이다. 그러나 回顧[회고]할 必要[필 요]는 없다. 前面[전면]에 또 길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中國歷史上[중 국역사상]의 未曾有[미증유]의 第三時代[제삼시대]를 創造[창조]하는 일이, 이것이 現在[현재] 靑年[청년]의 使命[사명]이다!

二[이].

그러나 民國[민국] 固有[고유]의 文明[문명]을 讚頌[찬송]하는 사람들은 느러가고 있으며, 外國人[외국인]까지 여기 參加[참가]하고 있다. 나는 늘 생각하기를, 무릇 中國[중국]에 오는 사람으로 골치가 아프고 얼굴이 찌프 러지도록 中國[중국]을 憎惡[증오]하면, 나는 敢[감]히 眞心[진심]으로 感 謝[감사]하겠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은 中國人[중국인]의 살을 뜯어먹으러 덤비랴고 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鶴見祐輔氏[학견우보씨]는 ‘北京[북경]의 魅力[매력]’ 속에서, 어느 白 人[백인]이 中國[중국]에 왔다가 豫定[예정]된 滯在期間[체재기간]은 一年 [일년]이었는데, 五年[오년]이 지났어도 北京[북경]에 머물러 있어 갈 생각 도 하지 않더라는 것을 記述[기술]하고 있다. 어느날 그들 둘이 같치 저녁 을 먹었다 ―.

“둥근 마호가니의 卓子[탁자] 앞에 앉었으니, 냇물이 쉴 줄을 모르드시 연다러 山海珍味[산해진미]가 나오고, 이야기는 骨董[골동], 그림, 政治[정 치] 等[등]에서 始作[시작]되었다. 電燈[전등]에는 中國式[중국식]의 갓이 씨워저 있어, 은근한 불빛이 古物[고물]이 죽 느러놓아 있는 방안을 담북 비최고 있다. 無産階級[무산계급]이니, 프로레타리아 ― 트니 하는 것은 무 엇 말러비트러진 것이냐는 듯하다.”

“나는 一面[일면] 中國生活[중국생활]의 空氣[공기] 속에 陶醉[도취]되 며, 一面[일면] 外國人[외국인]에게 魅力[매력]이 있는 事物[사물]에 對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보았다. 元人[원인]도 일찌기 中國[중국]을 征服[정 복]하였으나 漢人[한인]의 生活美[생활미]에 征服[정복] 당하고, 滿人[만 인]도 中國[중국]을 征伐[정벌]하였으나 漢人[한인]의 生活美[생활미]에 征 服[정복] 당하였다. 現在[현재] 西洋人[서양인]도 마찬가지로, 입으로는 데 모크라시 ― 니 무엇이니 떠들지만, 도리혀 中國人[중국인]이 六千年[육천 년] 동안에 建設[건설]해 놓은 生活美[생활미]에 迷惑[미혹]되고 있다. 한 번 北京[북경]에서 사러보면 그 生活[생활]의 멋을 이즐 수 없는 것이다.

큰 바람이 불 때의 萬丈[만장]의 紅塵[홍진]도 석 달마다 한 번식 있는 督 軍[독군]들의 戰爭遊戱[전쟁유희]도, 무엇이고 이 中國生活[중국생활]의 魅 力[매력]을 抹殺[말살]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記述[기술]에 對[대]하여 나는 現在[현재] 그를 否認[부인]할 勇氣[용 기]는 없다. 그러나 우리의 예전 聖賢[성현]은 우리들에게 옛것을 保守[보 수]하라는 格言[격언]을 남기고, 同時[동시]에 婦女[부녀]와 玉帛[옥백]으 로써 征服者[정복자]에 바치는 大宴[대연]을 準備[준비]하였다. 中國人[중 국인]이 勞動[노동]에 잘 견데고 子女[자녀]가 많은 것은 모다 酒宴[주연] 의 材料[재료]가 되며, 現在[현재] 또 우리들의 愛國者[애국자]가 자랑하는 바다. 西洋人[서양인]이 처음에 中國[중국]에 들어왔을 때에는 오랑캐라고 불리어, 여러 가지로 거북함을 免[면]할 수 없었으나, 그러나 現在[현재]는 이미 時機[시기]가 돼서, 우리가 일찍이 北魏[북위]에 바치고, 金[금]에 바 치고, 元[원]에 바치게 된 것이다. 外出[외출]에는 自動車[자동차]가 있고, 旅行[여행]에는 保護[보호]가 따르고, 通行禁止[통행금지]에 부닥쳐도 通行 自由[통행자유]고, 略奪[약탈] 당하면 반드시 賠償[배상]을 받는다. 孫美瑤 [손미요]가 그들을 부짭어 陣前[진전]에 세운즉 官兵[관병]은 銃[총]을 쏘 지 못하였다. 華麗[화려]한 집 속에서 盛宴[성연]을 享有[향유]하는 것은 말해 무엇하랴? 盛宴[성연]을 享有[향유]하겠즘 된 때에는 勿論[물론] 또 中國[중국]의 固有文明[고유문명]을 讚頌[찬송]하는 때다. 그러나 우리들의 樂觀的[낙관적]인 愛國者[애국자]는 도리혀 喜色[희색]이 滿面[만면]하여, 그들이 中國[중국]에 同化[동화]되기 始作[시작]하였다고 한다. 古人[고인] 은 일찍이 女子[여자]를 苟安[구안]의 城堡[성보]로 하고서 ‘和親[화친]’ 이라고 美化[미화]하여 自己[자기]를 속이었으며, 現代人[현대인]은 子女 [자녀]와 玉帛[옥백]을 奴隸[노예]가 되는 犧牲[희생]으로서 바치고서 ‘同 化[동화]’라고 美化[미화]하여 부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萬若[만약] 外國 人[외국인]의 누구고 이미 酒宴[주연]을 享有[향유]할 資格[자격]을 갖게 된 오늘날, 도리혀 우리들을 爲[위]하여 中國[중국]을 咀呪[저주]하는 사람 이 있다면, 그야말로 참으로 良心[양심]이 있는, 참으로 感服[감복]할 人物 [인물]이다!

그러나 우리들 自身[자신]은 벌서 適當[적당]하게 配置[배치]되어 버러서, 貴賤[귀천]이 있고, 大小[대소]가 있고, 上下[상하]가 있다. 제가 남에게 凌辱[능욕] 당하면 또 다른 사람을 凌辱[능욕]할 수 있다. 제가 남에게 무 러 띠기면 또 다른 사람을 무러 뜯을 수 있다. 한層[층] 한層[층] 미러 나 려가면서, 그것을 轉換[전환]시킬 수도 없고, 또 轉換[전환]시키려고도 하 지 안는다. 그 理由[이유]는 轉換[전환]시키면 有利[유리]한 일도 있지만 또 弊害[폐해]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서 古人[고인]의 良法美意[양 법미의]를 보아보기로 하자―.

“天[천]에 十日[십일]이 있고 人間[인간]에 十等[십등]이 있다. 下 [하]가 上[상]을 바뜰고 上[상]이 神[신]을 바뜨는 理由[이유]다. 그러 므로 王[왕]은 公[공]을 臣[신]으로 하고, 公[공]은 大夫[대부]를 臣 [신]으로 하고, 大夫[대부]는 士[사]를 臣[신]으로 하고, 士[사]는 皁 [조]를 臣[신]으로 하고, 皁[조]는 輿[여]를 臣[신]으로 하고, 輿[여]는 隸[예]를 臣[신]으로 하고, 隸[예]는 僚[료]를 臣[신]으로 하고, 僚[료] 는 僕[복]을 臣[신]으로 하고, 僕[복]은 台[이]를 臣[신]으로 한다.” (『左傳』[좌전] 昭公[소공] 七年[칠년])

그러나 ‘台[이]’는 臣[신]이 없어서 몹시 괴로울 것이 아니냐? 걱정할 것 없다. 그에게는 賤[천]한 妻[처]가 있고 弱[약]한 어린아이가 있다. 그 위에 이 어린아이에게도 또 큰 希望[희망]이 있다. 他日[타일]에 長成[장 성]하면 格[격]이 올라서 ‘台[이]’가 되어, 또 賤[천]하고 弱[약]한 妻子 [처자]를 부려먹을 수 있다. 이렇게 죽 連結[연결]되어 各各[각각] 제 자리 를 차지하게 되며, 여기에 敢[감]히 말성을 부리는 者[자]가 있으면 그 罪 名[죄명]은 分數[분수]를 모른다는 것이다!

이것은 예전 일로, 昭公[소공] 七年[칠년]은 現在[현재]에서 보면 까마득 하지만, 그러나 復古主義者[복고주의자]는 그렇게 반드시 悲觀[비관]할 必 要[필요]는 없다. 太平[태평]의 氣色[기색]은 아직도 있다. 늘 戰災[전재] 가 있고, 늘 水災[수재] 旱災[한재]가 있지만, 누구 거기에 對[대]하여 크 게 외치는 것을 드른 일이 있는가? 戰爭[전쟁]하는 者[자]는 戰爭[전쟁]하 고, 革命[혁명]하는 者[자]는 革命[혁명]하고, 處士[처사]는 橫議[횡의]하 고 있지 안는가? 國民[국민]에 對[대]해서는 限[한]없이 傲慢[오만]하고 外 國人[외국인]에 對[대]해서는 限[한]없이 柔順[유순]하다. 이것이 等級[등 급]의 遺風[유풍]이 아니고 무엇이냐? 中國[중국] 固有[고유]의 精神文明 [정신문명]은 事實[사실]에 있어서는 決[결]코 아직도 共和[공화] 두 글자 속에 埋沒[매몰]되지는 않었다. 다만 滿人[만인]이 이미 退席[퇴석]하여 前 [전]보다 조곰 달러젔을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日前[일전]에 각종의 饗宴[향연]을 볼 수 있다. 燒烤[소 고]가 있고 翅席[시석]이 있고, 便飯[편반]이 있고, 西洋料理[서양요리]가 있다. 그러나 茅屋[모옥]에는 죽이 있고, 길거리에는 턱찌끼가 있고, 들에 는 굶어 죽은 屍體[시체]가 있다. 燒烤[소고]를 먹는, 몸 값을 이루 따질 수 없는 큰 勸力者[권력자]도 있고, 또 굶어서 다 죽게 된 每斤[매근]에 八 文[팔문]식 치이는 어린아이도 있다.(『現代評論』[현대평론] 21號[호]를 보라) 所謂[소위] 中國[중국]의 文明[문명]이라는 것은, 其實[기실]은 權力 者[권력자]들이 享樂[향락]하는 人肉[인육]의 饗宴[향연]을 配設[배설]해 주는 것을 말한다. 所謂[소위] 中國[중국]이라는 데는 其實[기실]은 人肉 [인육]의 饗宴[향연]을 準備[준비]하는 부엌을 이름이다. 잘 아지 못하고 讚頌[찬송]하는 者[자]는 容恕[용서]될 것이나, 그렇지 않다면 이런 者[자] 들은 永遠[영원]히 詛呪[저주] 받으리라!

外國人[외국인]들 中[중]에서 잘 모르고 讚頌[찬송]하는 者[자]는 容恕[용 서]될 것이며, 높은 地位[지위]에 있어 豪奢[호사]만 하여, 그 때문에 迷惑 [미혹]되어 靈性[영성]을 忘却[망각]하고 讚美[찬미]하는 者[자]도 容恕[용 서]될 것이다. 그러나 다음의 두 가지 人物[인물]은 容恕[용서]되지 안는 다. 卽[즉] 그 하나는 中國人[중국인]을 劣等視[열등시]하여 그저 예전대로 두는 것이 適當[적당]하다고 생각하여 中國[중국]의 古物[고물]을 稱讚[칭 찬]하는 者[자]며, 또 하나는 世上[세상] 사람들이 다 달러서 自己[자기]의 旅行[여행]의 興趣[흥취]를 도어주기를 바래서, 中國[중국]에 가면 辮髮[변 발]을 보고, 日本[일본]에 가면 게다를 보고, 朝鮮[조선]에 가면 갓을 보고 하여야지, 萬若[만약] 服色[복색]이 다 같으면 아주 無味[무미]할 것이므 로, 그래서 亞細亞[아세아]의 文明化[문명화]를 反對[반대]하는 者[자]다.

이러한 者[자]들은 모다 憎惡[증오]를 받을 것이다. 랏셀이 西湖[서호]에서 가마꾼이 微笑[미소]하는 것을 보고 中國人[중국인]을 讚美[찬미]한 것은, 必是[필시] 다른 意味[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萬一[만일] 가마꾼이 가마를 타는 사람한테 微笑[미소]를 던지지 않었다면, 中國[중국]은 벌서 前[전]에 現在[현재]와 같은 中國[중국]이 아니 되었을 것이다.

이 文明[문명]은 外國人[외국인]을 陶醉[도취]시키었을 뿐만 아니라, 또 일직부터 中國[중국]의 모든 사람들을 陶醉[도취]시키어 微笑[미소]하게 맨 들었다. 古代[고대]부터 後來[후래]하여 아직도 많이 있는 許多[허다]한 等 級[등급]은 사람들을 各各[각각] 分離[분리]시키어, 結局[결국]은 他人[타 인]의 苦痛[고통]을 아무렇도 않게 생각하게 맨들었기 때문이다. 또 同時 [동시]에 各各 [각각] 저를 爲[위]하여 他人[타인]을 奴隸[노예]로 使用[사 용]하여, 他人[타인]의 希望[희망]을 짱쿠어 먹어, 그리하여 제 自身[자신] 도 또 奴隸[노예]가 되어 짱쿠어 먹히고 말 運命[운명]에 있다는 것을 잊고 있기 때문이다. 이래서 大小[대소] 無數[무수]의 人肉[인육]의 饗宴[향연] 이 文明[문명]이 있은 以來[이래] 오늘날까지 排設[배설]되어, 사람들은 이 會場[회장]에서 사람을 뜯어 먹고, 뜯어 먹히고, 屠殺者[도살자]의 愚妄[우 망]한 歡聲[환성]으로 悲慘[비참]한 弱者[약자]의 呻吟[신음]소리를 在倒 [재도]하고 있다. 女子[여자]와 어린아이야 말해 무었하랴.

이 人肉[인육]의 饗宴[향연]은 現在[현재]도 排設[배설]되어 있고, 許多 [허다]한 사람들이 앞으로 죽 排設[배설]해 나가랴고 하고 있다. 이러한 食 人種[식인종]들을 掃蕩[소탕]하고, 宴席[연석]을 뒤집어엎고 그 부엌을 때 려부시는 것이, 이것이 現在[현재] 靑年[청년]의 使命[사명]이다.

(1925年[년] 4月[월] 29日[일], 『墳』[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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