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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채만식 당랑의 전설

by 역달5 2022.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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螳螂[당랑]의 傳說[전설] (3幕[막]) 〔인물〕 박진사(朴進士)……자작 영농을 겸한 소지주, 60세 가량 고씨(高氏)……박진사의 처 원석(元錫)……장자, 40세 가량 최씨(崔氏)……원석의 처 인원(仁源)┐ ┌ 18세 가량 윤원(允源)┼……원석의 소생┼ 15세 가량 옥순(玉順)┘ └ 12세 가량 형석(亨錫)……차자, 35세 가량 김씨(金氏)……형석의 처 대원(大源)┐ ┌ 18세 가량 재원(在源)┘……형석의 소생└ 12세 가량 정석(貞錫)……3자, 27세 가량 오씨(吳氏)……정석의 처 내원(來源)┐ ┌ 8세 가량 │……정석의 소생│ 은순(銀順)┘ └ 3세 가량 소저(小姐)……딸, 19세 가량, 처녀 꼬마동이, 머슴, 마부 집달리, 집달리를 따라다니는 형식상의 경매인(고물상) 갑·을, 인부 2,3 인 미두취인중매점(米豆取引仲買店) 마루상의 사무원 갑·을, 동 바다지, 동미두 손님 갑·을 다수한 미두꾼, 하바꾼, 옥관(玉觀), 바다지, 구경꾼 등으로 된 미두장 중 심의 군중 〔연대〕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 즉 대정(大正) 10년대(1921) 8월 하순. 〔장소〕 남방의 어느 원벽(遠僻)한 작은 농읍(農邑)과 인천(仁川) 제 1 막 〔무대〕 초가로되, 칸살이 넓고 드높아 원래는 중후한 느낌이 났어야 할 것이었으 나, 너무도 낡고 그을고 추녀 등 군데군데 퇴락이 되고 해서, 그 창연(蒼 然)한 황량(荒凉)으로 하여 오히려 음울한 기운이 떠도는 박진사 집의 안 채. 상수로부터 부엌, 안방, 대청마루, 건넌방의 순서로 되었고, 앞에는 툇 마루가 주욱 연해서 달렸다. 환히 죄다 열린 위아래 앞문으로는 안방과 건 넌방이 다 같이 거뭇한 장롱이며 추다지 등속이 들여다보이고. 대청마루에는 길쌈을 하던 모시베들이, 짠 베가 꽤 많이 감기고도 북이 그 대로 걸린 채, 특히 눈에 뜨이도록 가운데 한복판으로 놓여 있고, 한편 구 석엔 커다란 뒤주가 한 개. 뒤주 위와 시렁에는 소반, 병풍 그 밖에 여러가 지 세간이 얹혀 있고, 열린 뒷문으로 해서는 널따란 뒷마당과 뒤채의 일부 분이 내다보인다. 하수는 종으로, 전면에 광과 후면에 아랫방이 달린 옆채. 이 옆채와 안채 와의 사이에는 약간의 간격이 있어서, 뒤채가 있는 뒤 울안에로의 통로가 된다. 상수의, 최전면으로 다가서는 이엉으로 엮어 세운 차면이 있어, 사랑채와 사랑채에 달린 대문이 그 앞에 가서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무대의 용적 이 허하는 것, 되도록이면 상수에다가 다시 종으로, 전면에 외양간에 달린 헛간 한 채를 두고 절구와 확과, 토매, 절굿대, 멍석 등이며, 쟁기, 써레, 홀태 기타 몇가지의 농구를 적당히 배치한다. 헛간이 만일 부득이한 경우면 그 대신 광 앞과 마루 밑창 기타 알맞은 자 리에 그럴 듯한 농구를 한두 가지씩 채워 놓아두어, 그것으로써 농가다운 기분이 나게 한다. 석양은 아직 멀었고 새때가 넌지시 겨운 오후, 막이 열리면, 손녀 은순을 등에 업은 고씨, 실심하니 만사에 경황이 없는 얼굴로 오락가락 토방을 거 닌다. 본바탕은 그러나 유복하고 덕스러우며 겸해서 고생에 찌들지 않고 곱 게 늙어, 그의 특특한 광당포(廣唐布) 치마적삼이 보기조차 민망할 만큼, 귀골태를 숨기지 못한다. 대청 앞마루에서는 만삭 가까운 형석의 아낙 김씨와 정석의 아낙 오씨 두 동서가 마주 앉아서 모시올을 째고 있다. 김씨는 시어머니 비슷하니 복성스 런 모습이나 오씨는 날렵한 몸피와 강파른 얼굴이 완구히 히스테리를 지니 어 보인다. 동서가 꼭같이 삼베 적삼에 껌정 물감을 들인, 매한가지 삼베 치마를 입었고. 건넌방 마루에서는 원석의 아낙 최씨와 소저가 누런 삼베로 크막한 고의와 적삼을 한가지씩 차고 앉아서 바느질을 하고 있다. 최씨는 부대한 몸집하며 여럿 중에서 누구보다도 유덕한 얼굴이나 약간 우둔한 편이고, 소저는 얄따 란 바탕에 좁은 이마 등 성미가 몹시 박절스런 모습이다. 분홍 항라적삼에 치마는 역시 껌정 삼베치마를 입었고, 최씨는 위아래가 제 빛깔의 삼베다. 넷이는 생김새는 그렇듯 다 각각이라도 (그리고, 고씨토록은 아니나) 한결 같이 걱정 있는 표정을 하고서, 깜박 잊은 듯 한동안 말들이 없이 제마다 일에만 잠착한다) 오씨 (모시 한 올을 송곳니에 물고 한참이나 성화를 먹다가 겨우 째고 나서, 푸뜩 불평스럽게 방백) 이건 쪼개선 다아 무얼 하자구! 김씨 (언뜻 대청마루의 베틀만 돌려다보고는 무언) 오씨 집행딱진지 개화장 딱진지 붙여논 년의 베를! ──(소저와 최씨, 따로이)── 소저 (바느질하던 삼베적삼을 문득 푸서억하니 치켜 들고는 곰곰 이 바라보다가, 방백) 머슴 줬으믄 마침이겠네! 최씨 (고개를 숙인 채, 빙긋) 나두 허너니 시방 그 말이지! 소저 어느새 노망두 아니시구. (도로 바늘을 잡으면서) 시상의 이걸 글씨 어떻게 입으신다구! ──(고씨, 따로이)── 고씨 (이윽고 딴 정신이 번져, 무심결에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방백) 빈 또 머얼리 갔구나! ──(오씨와 김씨, 따로이 계속하여)── 오씨 낼 모리믄 뭇놈들을 끌구 와서 죄다 모두 팔아 넹긴다믄서! 김씨 쯧! 인제 또 장만하믄 그만 아닌가? 오씨 성님두! 장만했다가 또 남 존 일 시키라구? 김씨 오온! 집행을 또 맞어서 어떡허자구! ──(소저와 최씨, 따로이 계속하여)── 최씨 허기사 살림은 나날이 이렇게 쪼들려 가구 (間[간]) 자손들 보는데 당신이 몸소 쥬모를 내시자구 하시는 노릇이지만. 소저 그날두 글씨 (오씨를 힐끗 돌려다보고는 소곤소곤) 막내오 빠가 군산 갔다가 심부름하란 돈에서 이백 냥이나 주구 새 루 양복을 해입구 온 걸 보시구서 그만 화증이 나서서 그리 섰다우! 다락에서 이 벨 끄내가지구 둘오시더니 어머니더 러, 당장 이걸루 내 고의적삼 만들어 노라구. ──(오씨와 김씨, 따로이 계속하여)── 오씨 말두 마시우! 인제 두구 보시우만 (고씨가 들을까봐, 돌려 다보고는 소곤소곤) 인제 한 달이 머다허구 연해 집행난릴 맞일 테니 두구 보시래두. 김씨 쯧! 그래두 헐 수 없는 노릇이구! 다아 집안 운수소간인걸. ──(고씨, 따로이, 한참만에)── 고씨 하느님마저 야숙두 하시지! 이왕이니 심은 것이나 걷어 먹 게 해주시들랑 않구서! (마당으로 내려가서 상수의 차면께 로 걸어나가면서) 이 사람한테서는 어쩌자구 오늘두 여태 가암감 소식이 없는구! (間[간]) 찾으러 나가신 으런두, 가 시더니 소식이 없구! ──(소저와 최씨, 따로이 계속하여)── 최씨 (곰곰이 방백) 집안이 이 꼴이 되기 전에 진작 애기씨가 시 집을 갔어야 할 것을! 쯧쯧! 소저 (고개를 숙이고서 말은 없어도, 누가 아니라느냔 듯이, 불 평한 빛이 알아보게 얼굴로 드러난다.) 최씨 둘두 없는 양념딸얘기니, 다아 참, 고루기두 골라야 할 테 지만 (間[간]) 집안이 그만, 이 지경이 되였으니! ──(오씨와 김씨, 따로이 계속하여)── 오씨 전답은 버얼써 다아 남의 것이 되구, 집두 잽혔는데 기한이 넘었댑니다! 인전 머, 집두 터두 없구, 죄다 굶어 죽게만 생겼대나 봐요! 김씨 설마 산 사람 입에 낙거미줄이야 칠라던가? 오씨 성님두! 아, 우선 지끔만 보시우? 오늘 저녁은 보리만 곱삶 어야 안 해요? 보리만 또 많으믄? 김씨 (깜박 생각이 나서) 참! 내 정신머리 좀 바라. (대견히 최 씨를 돌려다보면서) 성니임? 최씨 (마주 건너다보면서) 으응? 김씨 저어, 오늘 저녁 (고씨가 들을까봐 돌려다본다) 고씨 (상수의 차면 밖으로 천천히 퇴장) 김씨 오늘 저녁 양식은 어떡헌대요? 최씨 나두 허너니 시방 그 걱정이네! 김씨 머슴허구 꼬마둥이두 그렇지만, 어머님이 그 노인이 보리곱 삶일 어떻게 잡수시와! 최씨 즘심에 두주는 닥닥 다아 긁었던가? 김씨 그리구서두 쌀이 모자라서 들에 내가는 밥이 그렇게 반섞이 가 더 되잖었어요. 최씨 쯧! 광에 있는 독에치라두 조금만 퍼다가 먹었으믄 좋겠다! 오씨 큰일나라구요? 최씨 허기사 그렇다데만서두. 그러니 그게 무슨 놈의 법이 그럴 꼬? 다같이 집행딱지는 붙었으믄서두 두주치는 먹으라구 허 구, 광에다 둔 독에치는 손두 못 대게 허구. 오씨 두주는 두줄 집행했으니깐 쌀은 먹어두 상관없지만, 독에친 쌀을 집행했으니깐 안된대나 바요. 소저 (입을 삐쭉) 벨 까달스런 법두 다 많지! 최씨 가만히, 집행딱지를 떼구서 한 말만 덜어내구 도루 제대루 붙이믄 안될까? 김씨 그랬다가 말썽이나 생기믄 어떡허게요? 정석 (무대 뒤에서 머언 소리로) 은순아? 오씨 네에? 정석 냉수 한 그릇 떠와! 오씨 (부엌으로 해서 퇴장) ──(최씨와 김씨, 따로이 계속하여)── 최씨 밀이나 좀 갈아 두었드라믄 이런 때 더러 칼제비나 해서. 김씨 머슴은 가루것두 그리 질겨하잖나 봅디다! (상수의 차면 밖 으로부터 윤원, 옥순, 재원, 내원의 네 아이가 빈 벤또 그 릇을 달그락거리면서 요란하니 등장. 사나이 셋은 하얀 일 개(日蓋)를 씌운 보통학교의 학모를 쓰고 윤원과 재원은 두 루마기까지 입고 일제히 버선에다가 편리화를 신었다. 옥순 은 편리화 대신 갖신을 신었고. 모두들 얼굴이 버얼겋게 익고 땀이 흐르나, 저마다 씩씩하 니 원기가 있다) 최씨 오는구나, 들! 오온, 이 더운데 저것들이! ──(재원과 김씨, 따로이)── 재원 (김씨의 앞으로 달려가서) 어머니 어머니! 김씨 오늘두 학교 논, 김들 맸니? 재원 나, 수박 사먹게 돈! ──(윤원과 최씨, 따로이)── 윤원 (두루마기와 모자를 벗어 내던지면서) 할아버지 안 오섰수? 최씨 안 오섰다! 윤원 어머니, 나 밥 좀 주? ──(내원, 혼자서 따로이)── 내원 엄마아? (오씨를 찾느라고 둘러보다가 하수의 옆채 사이로 해서 뒤 울안으로 달음질을 쳐서 퇴장) ──(재원과 김씨, 따로이 계속하여)── 김씨 도온? 넌 돈 이름을 다아 아나보다? 재원 흐응! 저기 저 수박 많이 난 거! 김씨 재주 좋거들랑, 좀 사다가 나두 좀 주구, 느이두 먹구 하겠 지? ──(윤원과 최씨, 따로이 계속하여)── 최씨 밥 먹기두 급하다! 더운데 어서들 벗어붙이구, 훠어훨 찬물 루 씻기나 하려므나! 윤원 배고파 죽겠구먼! 김씨 넌 그게, 수박 고푸닷 소릴 테지? 윤원 (히죽 웃으면서) 좀 사주우! 김씨 그래라, 날 어따가 갖다 팔구서, 수박들 사먹어라. 재원 어머닐 누가 사나, 머! 최씨 오온! 자식두! 김씨 큰일들 났다! 느일 모두 먹구퍼 하는 대루 자알 멕이구, 공 부두 다아, 대학교꺼정 졸입을 시키구 하자믄 돈이 집채만 침 있어두 모자랄 텐데! (가볍게 한숨) 이건 되려! (대견히 무릎을 짚고 일어선다) ──(소저와 최씨와 옥순, 따로이)── 소저 (기둥을 안고 섰는 옥순을 건너다 보면서) 옥순인 어째 저 리두 얌전했을까? 최씨 얼굴에다가 시방, 수박 좀 사주우 허구, 쓴 게 아주 선연하 구면서두! 옥순 (배시기 웃으면서) 수박이 저어, 물동이마안씩 하겠지! 소저 (문득 방백) 올 여름은 참, 수박 한번두 실컷 못 먹어봤다! ──(김씨, 따로이)── 김씨 밥이나 먹어라! 들. 보리밥에다가 고추장허구, 기름허구, 드뿍 마안히 치구, 열무김치 넣구 해설랑 착착 비벼논다치 믄, 참, 꿀맛이지! (토방으로 내려서면서) 수박이 어딜! (間[간]) 자아 시어언한 뒷마루루 가자들. 꿀밥 비벼 주께 시니. (토방을 지나 상수의 부엌으로 퇴장) (아이들, 대청마루의 뒷문으로 해서, 혹은 하수의 옆채 사이로 해서 뒤 울 안으로 퇴장) ──(소저와 최씨, 따로이)── 최씨 뒤채서는 내원이놈이 수박 사달라구, 단단히 시방 성화를 멕히나보다! 소저 아이라구 하두 어디서, 응석만 부려쌓구, 소갈찌가 사나서! 최씨 쯧! 한참 그럴 나이라! (형석, 상수의 차면 밖으로부터 총총히 등장. 삿갓을 들고 살포를 집고 탈 망바람에 발목만 조금 걷은 채, 버선에다가 대님을 묶고, 헌 마른신을 신었 다. 삼베 고의에, 적삼만은 해어지고 등을 받고 했으나마 모시것은 모시것 이고. 호인 타입으로 모계의 두투룸한 바탕이기는 하나 사람이 좀 우둔해 보이고 겸하여 빈상(貧相)이 진 얼굴이다. 최씨와 소저, 돌려다보고는 몸을 조금씩 고쳐 앉는다) 형석 (누군지를 찾느라고 휘휘 둘러보다가, 최씨더러) 형님 안 오섰어요? 최씨 (약간 두릿거리면서) 아니요! 형석 전보두 안 오구요? 최씨 전보요? 형석 허, 참! 웬일이어! (살포를 주체 못해 하다가 삿갓만 토방 에 다 놓고 올라서면서) 편지두 안 왔어요? 최씨 편지(더듬는다)두, 아마 안 왔지이? (소저를 건너다본다) 소저 안 왔어요! 형석 허, 참! (마룻전에 털썩 앉아 잠시 우두커니 먼산을 바라다 보다가 방백) 아버님도 안 오시구! 일동 (침묵) 소저 (마침 생각이 나서) 작은오라버니 참, 저녁 양식이 하나두 없대요! 쌀이. 형석 (버럭 것질러) 모른다! 쌀이구 막덕이구. 소저 (무춤했다가 그 다음 뾰로통해서 눈을 내리깐다) 형석 (두런두런) 남 속상하는 근경은 들 모르구. 일동 (침묵) 형석 (이윽고) 두주쌀을 그래, 벌써 다 먹었단 말이냐? 소저 (입술만 뚜우 더 나오고, 무언) 최씨 쌀이, 두주에 남은 쌀이, 한 거저, 서 말 푼수나 되었을까? (間[간]) 그래두 애껴서 먹느라구 먹었어두 (間[간]) 원체 식구가. (고씨, 상수의 차면 밖으로부터, 아까 나갈 때처럼 은순을 등에 업고 거니 는 걸음으로 등장) 형석 형 안 왔어요? 고씨 쯧! 안 왔나보구나! (間[간]) 넌 왜, 즘심 내간 것두 두어 술이나 뜨다가 말었느냐? (間[간]) 속이 편찮은가 보구나? 형석 전보두 안 오구요? 고씨 (토방으로 올라선다) 전본지 원 무언지! 형석 허, 참! (間[간]) 편지두 없구! 고씨 (최씨와 소저더러) 이년을 좀, 받아서 게 어디 뉘던지 제 에밀 갖다가 주던지 해라. 선잠이 깨서 생뗄 써쌓더니. 형석 아버님은 또, 웬일이시구! 고씨 그러게 말이지! 최씨 (내려와서 은순을 받는다) 떼재기년이 코가 비틀어졌구먼! 고씨 (마루로 올라가 앉아서 장죽에 담배를 붙인다) 형석 이앤 드러눠서 또 낮잠인가? 고씨 뒤채에 있나 보더라! 형석 (은순을 안고 하수의 옆채 사이로 퇴장하는 최씨더러) 정석 이 좀, 나오라구 일르시우! 최씨 예에. (퇴장) 형석 (우두커니, 방백) 참, 딱한 노릇이더라! 집안은 사뭇 이 지 경이 됐어두 그저 모른 척하구서, 빙 나돌아댕기기 아니면, 밤이나 낮이나 저러구 누워서 낮잠자기! (間[간]) 천핫일을 도모하자면 가사를 돌아보잖는다지만, 그런 주변에 천하사 가 어디 당한 거여! 성현의 말씀에두 수신, 제가, 치국, 평 천하라구 하섰는데! 제 몸 하나 감장 못허구, 제 집안 하나 바루잡을 줄을 모르는 사람이 천하사를 무슨 재주루 해나가 더람! 내, 원! 고씨 젠들 무슨, 속두 없을라더냐! 형석 말씀두 마시우! 속은 무슨 속이 있어요? (間[간]) 아, 형편 이 이렇게 각다분할수록 눈을 쥐어뜯어 가면서, 같이 좀 납 디기나 해줘야 답답하기나 더얼 하지요! 내가 무슨, 절 갖 다가 부려먹자는 노릇은 아니지만, 아, 오늘 같은 날만 하 더래두 번두웅번둥 놀면서 낮잠이나 자느니, 아, 들에라두 소풍삼아서 나와서 서두리라두 좀 해줄 일이 아니요? (間 [간]) 간신히 볼(洑) 트긴 텄다는 게 겨우 그저, 참새 눈물 만치 내리는 물을, 사방 뭇놈들허구 싸워가면서, 네 군데 다섯 군데 물을 대느라구,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목이 터지 두룩 악다구니를 허구, 그러니 그런 때 등신이라두 하나 손 대가 있어주면 오죽 힘겨웁구 좋아요? (한숨) 허기야 참, 그 짓을 해서 겨우 일년치 더 농사라구 지여놓면 또 그리 우난 무엇이 있으꼬마는, (間[간]) 그러구우, 암만 납딘대 두 흉년은 들어둔 흉년이구. 아마 반타작두 어려우리다! 내 남직 할것없이 그 넓운 들이 벼포기는 죄다 뇌랗게 말러 배 틀어진걸! 시방 한참 자라구 새낄 치구 할 무렵인데, 세상 에 물맛을 얻어보아야 말이지요! (한숨) 그러니, 꼼짝없이 흉년은 흉년인데, 그렇다구 글쎄 두 손목 묶어논 배 아니 구, 우두커니 바라다보구만 있어요? 싸우구 뜯구 하면서라 두 내려오는 물은 내 논으루 대서 단 얼마라두 농사를 건져 야 안해요? 그렇게 해서 막이, 내일날 남의 것이 될망정이 라두 우리가 물역을 들인 올 농사는 지여 먹어야 안해요? 내년은 내년이라구, 올 세안은 무얼 먹구 살어요? 그거나마 가꾸잖구서. 아, 우선 당장 오늘 저녁 양식이 없답디다? 당 장 오늘 저녁! (間[간]) 그러나마 식구가 적어서요? 이십 명이나 되는 권솔 아니여요? (꼬마동이, 바지게에다가 밥보자기를 덮은 광주리를 짊어지고 상수의 차면 밖으로부터 등장) 형석 머슴 물 잘 보더냐? 논두덕에 가 드러눠서 낮잠 안 자구? 꼬마동이 예에, 잘 보아요! 형석 널랑은, 그것 내려놓구서, 인전 가서 꼬올 해와야겠다? 꼬마동이 예에. (마당 가운데쯤 지게를 받쳐놓고 광우리를 마루로 들 여온다) 형석 아홉 말지기 논에 물 많이 잽혔더냐? 꼬마동이 아직두 멀었어요! 형석 꼬올 좀 나우 해! 까치집만치 해서 짊어지구 오지 말구서? 꼬마동이 예에. (지게를 도로 지고 돌아선다) 형석 참! 내가 깜박 잊었구나! 옹퉁이나 무엇 하나 좀 지게다가 놓아가지구 대문간에 나가서 기대리구 있거라. 싸전에 가서 혀짧운 소리를 해서라두 쌀을 좀 얻어와야 할 까보다! 고씨 싸전일랑 내라두 좀 가볼거나? 넌 들에 또 나갈 테면서. 형석 어딜 다 가신다구! 지가 글러루 들러서 나가요! 고씨 내 것을 내 집에다가 두어두구서두 번연히 못 먹구! (꼬마동이, 헛간 혹은 광에서 옹퉁이를 찾아다가 바지게 위에 올려놓아 지 고는 상수의 차면 밖으로 퇴장. 동시에 하수의 옆채 사이로부터 정석 등장. 풀대님한 모시 고의와 적삼에, 기른 머리가 터부룩하고 낮잠을 자다가 깬 표적으로 얼굴이 부숙부숙하다. 모습은 형석과 한 모습이라도 우둔하지가 않고 지적이요, 특히 눈에는 남을 위압하는 정채가 들어 있다. 표정은 그러나, 정열과 타기(惰氣)의 두 상극 진 그림자가 미묘하게 서로 교착되어 가지고, 언뜻 포착하기 어려운 불안한 흔적이 없지 못하다) 형석 (잠시 정석의 얼굴을 여새겨 보다가, 부드럽게) 웬 낮잠을 그리 자쌓느냐? (間[간]) 여름사람이 낮잠을 너무 자면 병 이 생기는 법인데! (정석, 하품을 삼키면서 마룻전으로 넌지시 걸터앉는다) 일동 (한동안 침묵) 형석 (이윽고 걱정삼아) 오늘두 형님한테서는 여태 아무 소식두 없으니 어떡허면 좋단 말이냐? 정석 (덤덤하니, 무언) 형석 허, 참! (間[간]) 아버님은 또, 웬 일이시며! 정석 (덤덤하니, 무언) 형석 전보라두, 또 좀 쳐볼거나? 정석 글쎄요! 형석 한장 좀, 치려무나? 정석 네에. 형석 큰일났다! 큰일났어! (間[간]) 형님이 이번이나 일이 잘 여 의해가지구 오시기만 하눌같이 믿구 있는데, 만약에, 만약 이라두 참, 삐끗허구 보면! 정석 (돌려다보면서) 소저, 뒤채 가서 담배곽 좀 가지구 오느라. 소저 (바느질을 내려놓고, 하수의 옆채 사이로 해서 퇴장) 형석 (곰곰이) 너두 다아 알다시피, 논이래야 죄다 해서 닷 섬지 기, (間[간]) 그게 말끔 다아 저당에 들어갔다가, 넉 섬지 기는 벌써 다아 남의 것이 되구! (한숨) 나머지 한 섬지기 는 새말 강전이한테 잽힌 것이, 양력으루 새달 그믐이 기한 이라는구나! 그러니 한 달 며칠밖에 더 남었느냐? 고씨 그 논 한 섬지기는 참, 떼답으루 논두 조려니와 느이 징조 할아버님 대버틈 물려 내려오는 논이란다! 형석 이번에 요행 돈이 다아 돼서, 도루 찾게 되면야 더할 것 없 이 좋구, 그렇지 못하면 이자라두 주구서 한 일 년 더 연기 라두 하는 것이구, 또오 영영 그두저두 안되겠으면, 아주 뚜드려 팔어서 다만 얼마라두 건질 도리를 하구, (間[간]) 아, 그래야망정이지, 동동 그대루 떠내려보내다께 될 말이 냐. 우리는새려 또오, 아버님이 당신 손수 장만하신 것두 아니요, 지끔 어머니 말씀대루, 저어 징조할아버지 적버틈 벌써 사대째나 물려 내려오는 전장을 갖다가! (내원, 가죽으로 만든 담배 케이스를 손에 쥐고, 하수의 옆채 사이로 해서 등장) 정석 (버럭) 성냥은? 고씨 (성냥을 던져 주면서) 옜다! 내원 (담배 케이스를 정석에게 주면서, 손가락을 입에 물고) 수 박! 정석 저 손꾸락! (담배를 붙여 물고) 뒤꼍으루 가서 놀지 못해? 고씨 지천해쌓지 마라! 어린 것이 먹구 싶어서 그리는걸. 형석 (내원더러) 수박 내가 이따가 사주마! 응? 내원 큰 거! 형석 오냐, 큰 걸루. 내원 큰 거, 지끔! 형석 이따가, 이따가 사줘! 정석 가아, 인전! 내원 (말끗말끗, 하수의 옆채 사이로 해서 퇴장) 일동 (잠시 침묵) 형석 집은 일 년 안이면 언제든지 도로 물려준다니깐, 원 종차 서서히 어떡허든지 한다지만, (間[간]) 허! 인전 내일 하루 더 지나서 모린다치면 벼락같이 (얼굴로 좌우를 가리키면 서) 저걸 모두 경매하러 달려들지! (間[간]) 허기야 집안이 티검불 하나 없이 폭 망하는 판에 세간 나부랭이가 그리 대 수냐마는, 세상에 그런 망신이 어딨단 말이냐? 돈이나 아니 나 많지두 않구 겨우 이백 원에! (間[간]) 돈 겨우 이백 원 에 그래, 경매꾼 놈들이 내 집 내정을 둘와서 세간을 모두 끌어내다가 놓구, 이건 암만이요오, 이건 암만이요오 하는 꼴을 당해야 옳단 말이냐? 고씨 막말이지, 느이 아버님은 사뭇 자결을 하시러 드시리라! 형석 그러니, 그러니 말이루구나! 요행 참, 내일 해전까지만 형 님이 무슨 도리를 해가지구 내려오서서, 천하 못 당할 그 창피두 끄구, 논 일사두 우선이나마 무사하게 규정을 짓구 하게 된다면 모르거니와, 만약 그렇지 못하는 날이면? 응? 만약 그렇지 못하는 날이면? (길게 한숨) 어떡허면 좋으냐 어떡허면! 정석 (덤덤하니 담배연기만 뽑으면서, 무언) 형석 얘야! 정석아? 정석 (마주 볼 뿐, 무언) 형석 어떡허면 좋으냐? 응? 정석 글쎄요! 형석 글쎄요라니! (間[간]) 이십 명 권솔이 장차 목숨을 들얹아 야 할 논 그것마저 떠내려가! 세간은 경매를 당해! 집두 터 두 없이 우리 집이란 건 폭 망해! 그렇게 돼두 넌 괜찮으 냐? 상관두 없구? 정석 상관이 있구 없구가 아니라, 걸 지가 어떡허나요? 형석 그야 넨들 별수가 없지! 없지만서두, 난 이렇게 애가 밭구 간이 타는데, 넌 본다치면 아무 걱정두 없는 것처럼 그저, 태연하니, 그래서 하는 말이다! 정석 쯧! 그런 게 형님허구 저허군 다른 점이 아녜요? 형석 다른 점이라니? 정석 (무언) 형석 (노여서) 넌 속에 신학문두 들구, 사람이 다아 참 도저해서 그러나 보다마는, 못생기구 어리석은 형놈이라구 그렇게 괄 시하질랑 마라! 정석 괄시가 아녜요! 형석 내가 이렇게 농투산이루, 꿍꿍 소처럼 일이나 하구 기우는 집안을 붙들구 싶어서 앨 써쌓구 하는 것이 무슨 내 한몸뚱 이나 내게 딸린 인간들만 위하자는 노릇이더냐? (間[간])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 집안을. 정석 또오, 형님 공로나 정성을 모르는 것두 아녜요. 아니구, 형 님허구 저허구 다르다는 건, 형님은 인생의 목적을 갖다가 한낱 가족에다 가두구서, 그 가족의 행복만을 최선이요 궁 극의 이상으로 삼구, (間[간]) 그러자니깐 자연 온갖 정성 이며 노력이 글러루만 쏠리는 것이구, (間[간]) 전 그런데, 가족이나 집안일에 대해선 도무지 경황이라는 게 없구, 해 서 말하자면 등한하달까, (間[간]) 그게 그러니깐 형님허구 저허군 다아 참, 동태동기간이로되 서루 다르다는 그 말씀 예요! 속담에두, 한날 한시에 한 어머니 뱃속에서 나온 손 꾸락두 길구 짧구 하다구 안해요? 그렇다구서 무슨, 형님의 그런 가족본위 이상이, 그런 포부가 구태라 나뿌다는 것두 아니구, (間[간]) 그러니깐 우열이나 장단은 둘째 문제루 치구서 말씀예요! 형석 수신, 제가 연후에 치국, 평천하란다! 정석 위천하자는 불고가사니라구두 일르잖었어요? 형석 그렇다구 글쎄, 집안이 당장 눈앞에서 망하는 걸 번연히 보 구 있으면서두, 태평으루 눠서, 걱정 한번 하는 법 없구! (間[간]) 그래야 옳아? 정석 걱정을 해서 면할 도리가 있다면야, 기왕 보기두 딱한 노릇 이구 허니, 같이서 걱정두 해 드리구 하겠지만서두, 어디, 걱정으루 일이 피나요? 차라리 당하는 일은 당하구, 그 다 음 일이나 잘 조처할 도릴 궁리하는 게, 훨씬. 형석 그래? 막말루, 일을 당한다구. (間[간])그 다음? (間[간]) 아니, 일을 당하구 나면 집안은 영영 망하구 마는걸, 다시 도린 무슨 도리란 말이냐? 정석 집안이 망하면 재산이나 없어졌지, 사람까지 없어지나요? 형석 그러니 말이여! 정석 그러니 말씀에요, 사람은 없어진 게 아니구서 죄다 그대루 처졌으니깐, 그 다음버틈 다시 살아나갈 도릴 마련해야 않 겠어요? 형석 그래 글쎄! (間[간]) 집안은 한푼 껀지 없이 망했는데 우쿠 를하니 이십여 명 식구가 무얼 먹구 살아가느냔 말이여? 정석 헤쳐에죠! 집안을. 고씨 집안을 헤치다니 그야 어디 될 말이냐! 정석 알구 보면 아버님 고집으루 집안이 이 지경투룩 됐습넨다! (間[간]) 진작에 집안을 세 포기며 세 포기 네 포기면 네 포기를 뚜욱뚝 갈라서 헤쳐놨어만 보시우? 그랬으면야, 그 중에서 한 포기나 두 포긴 망했을 값이라두 성한 포긴 성했 지! 어디가 요렇게 물루 씻은 듯 말끔히 망해 버리구 말아 요? 고씨 느이 아버님, 노상 말씀하시는 용머리 윤선달네 집안, 못 보느냐? 그 사람네 집안은 우리 집 전장만두 못하믄서 식구 는 더 많어두, 전답 잽혔다가 떠내려보내네, 집행을 맞네 한닷 소리 없더라! 외려 해마다 성세가 늘어간다는 소문은 들려두! 정석 어머니? (間[간]) 용머리 윤선달네가 우리 살듯 한답디까? (間[간]) 거긴 드메골짝이구, 옌 명색이 읍이예요. 그 사람 네야 들기름이나 쇠기름으루 불을 켜지 우리처럼 남포동에 다가 석유불 켠답디까? 그 사람네 여섯 부자가 누구 하나라 두 우리들처럼 양복 입구 구두 신구 다닌답디까? 서울루 군 산으루 대처(大處) 출입하는 사람이 있으며, 권연 피우는 사람은 있답디까? 자질들을 둘셋씩 서울루 유학 보냈답디 까? (間[간]) 그 사람넨 명지허구 모시허굴랑은 짜서 값 많 이 받구 팔구서 미명허구 삼베만 입지요? 봄버튼 가을까진 보리밥으루만 욱이지요? 식구라군 있는 대루 죄다 생일을 하지요? 논이라군 있는 대루 죄다 즈이네 손으로 농살짓지 요? 번연하잖아요? 쓰는 덴 없는데, 이리저리해서 생기는 건 있으니깐, 되려 밀려서 형세가 늘어갈밖에요. 형석 우리두, (間[간]) 이런 말은 지금 다아 소용 없는 소리지만 서두 형님이 그렇게 담이 크지만 않았어두, 이 지경투룩은 되질 않았더란다! 정석 허기야 것두, 큰형님이 무슨, 물산객줄 하시구퍼서 시작했 으며, 어장이니, 금광이니, 필경은 막가는 길루다가 미두 니, 그런 걸 하시구퍼서 호사거리나 심심소일루 시작하섰나 요? 형석 나두 머, 그 으런을 원망하는 건 아니란다! 정석 세태가 전과 달라서, 농살 짓구 도질 받구 하는 것만 가지 군 일년 가용이 모자라질 않었어? 석율 사서 써야 하고, 삼 전이나 오전짜리 권연을 사면 하루밖엔 피우질 못허구, 구 두 한 켜레면 팔구 원이요, 양복 한 벌이면 삼사십 원이구, 아이들 학빈 다달이 사십 원씩이구 (間[간]) 그렇게 다리 물쓰듯 쓰는 용을 무얼루 충당했는데요? 큰형님이 군에서 받는 월급 고까짓것 삼십 원으루? 어디 어림이나 있나요? 헐수없이 빚을 질 밖에요! 다달이 빚이요 해마다 늘어가느 니 빚 아니겠어요? 몇해지간 그리구 나서 보니 빚이 겁나게 앞에 와서 챘지요? 이건 이래선 안되겠다구, 담은 큰 으런 이겠다, 한목 큰 이문을 볼 령으루 물산객줄 시작했지요? 실팰 하구서 그 다음엔 어장을 했지요? 또 실팰 하구서 금 광을 했지요? 것두 실팰 하구선 마주막엔 미두! (間[간]) 그렇지만 미둔 더 허왕한 노름? (間[간]) 그동안 줄곧 손만 보잖었어요? 그 사품에 논, 밭, 산장, 집 모두 저당에 들어 갔지요? 들어가선 이자만 연해 늘어갔지요? 그리다간 기한 이 지난다치면 떠내려가구, 떠내려가구! 형석 ┐ │ (길게 한숨) 고씨 ┘ 일동 (잠시 침묵) 정석 (이윽고) 소위 대가족주의라구, 많은 권솔이 한 울안에서 살기라는 게, 마치 여럿이 한 상에 둘러앉어서 밥먹기 같습 넨다! 혼자서 먹는다 치면 가령 반 그릇밖엔 안 먹히던 밥 이라두, 여럿이 같이서 먹는다 치면 훨씬 더 멕히질 않어 요? (間[간]) 삼형제나 사형제가 한 집에서 살면 혹시 밥짓 는 남구나 더얼 들까? 괜헌 용, 무책임한 용 그게 은근히 여간만 나는 게 아녜요! 가령, 우리 집 토지가 논만 닷 섬 지긴가 그랬대지요? 그걸 그런데, 분잴하자면 큰형님은 어 머님 아버질 모서야 하구 장자니깐 절반 이상 타시겠지. 그 나머지 두 섬지기쯤 가지구서 형님허구 저허구 나누겠지. 한다치면 우선 저만 하더래두, 내 재산이란 건 도통 한 섬 지기 요것뿐이다 하게 되거던요. 그러니깐 그놈 한 섬지기 재산을 한도로 삼아가지구서 생활표준을 세울 게 아니겠나 구요? 그 수입, 그 범위 안에서 옷두 해입구, 담배두 오전 째릴 사서 피울 데 삼전째리로 낮추구. (間[간]) 그런데 분 잴 하질 않구서 함께들 산다 치면 우리 집 재산이 닷 섬지 기니라 하거던요! 닷 섬지기. (間[간]) 닷 섬지기 재산이거 니 생각을 하구 있으니깐, 제 앞으루 한 섬지기 재산을 타 가지구 나앉으니보담 맘이 우선 풍더분헌 것 같구, 눈두 자 연이 높을 게 아녜요? 식구가 그만침 많으니깐 용두 그만침 더 쓰인다는 건 요량을 대개 않구서 말이지요! 그게, 삼형 제면 삼형제 죄다가 다아 그렇거든요! 허니깐 결국 가선 삼 오십오, 일백오십석지기 재산 정도로 실 가용은 쓰이게 되 질 않겠어요? 형석 내야, 머, 요 몇해지간 정말이지, 권연 한 곽이라두 사 피 운 일이라군 없다! 정석 일 테면 말이지, 해필 형님더러 낭빌 하섰대나요! 형석 작년 봄버틈, 대원이놈 학비 이십 원씩은 다달이 대오지만 서두. 정석 애당초에 그러니깐, 저어 외국사람들이 하는 법식으루, 어 머니 아버지 두 분일랑 그 두분 따루. 큰형님일랑 큰형님 따루, 형님일랑 형님 따루, 죄가 따루따루 포길 갈랐더라면 설마 오늘날 이 지경투룩은 이르질 않었으리란 그 뜻으루다 가 하는 말이에요! (間[간]) 누구보담두 형님은 성했으리 다? 어머니 아버지께서두 단 얼마간이래두 띠어서 당신들이 지니구 기섰으면 십상 무사하섰을 테지만. (間[간]) 그러 니, 지금 요모양으루 몽땅 치팰 당하느니보담 한 포기나 두 포기만 성했더래두 그게 어디요? 일동 (침묵) 정석 (일어서서 뒷짐을 지고, 토방으로 오락가락하다가) 헤쳐야 지요! (間[간]) 지끔이래두 헤쳐야지요. 우선 정릴 해가지 구, 단 한푼이 남더래두 그런 대루 정릴 해가지구서 따루따 루 해쳐야지요! 그밖엔 아마 별 도리가 없으리다. 형석 허기야 나두 느을 허느니 그 말이지만, 아버님이 무가내하 루 안들으시구, (間[간]) 생각하면 또 그게 어디 일조일석 으루 쉰 일이냐? 고씨 내 밥술이나 먹구 지낼 때두 그렇지 못했는걸 시방 더구나 이 지경이 돼가지구서 뿔뿔이 흩어지다니, 차마 할 노릇이 냐! (間[간]) 굶어두 같이 앉어서 굶구, 죽어두 같이 앉어 서 죽는 것이구, 허지! 정석 전 그래서 이렇게 아주 작정을 했어요! (間[간]) 전, 전 떠 나구요. (間[간]) 워너니가 영영 집에 붙어 있자던 요량이 아니었으니깐요. 그리구 진작버틈 다시 일어서자구 벼루던 참이니깐요. (間[간]) 그러니깐 이번 계제에 낼이구 모레구 아주 떠나구 마는 것이구요. 고씨 전답이 없어지거나 집안이 망하거나, 그런 건 다아 열두째 니, 제발 이 늙은 에미애비 가슴 좀 고마안 피워주려므나! 어쩌자구 또 뛰쳐나가려굴 든단 말이냐? 어쩌자구! 정석 허! 궁리가 본디 그렇게 뚫린 걸, 지끔 와서 어떡허는 수가 있나요! 팔자라께 다른 것 없읍넨다! 고씨 시상의, 불효 불효 해두 너 같은 불효가 있을라더냐? (間 [간]) 우완중에 인제는, 전처럼 잘 먹구 잘 입구 편안히 살 적허구두 다르구 집안은 망해 부모 형제간은 굶어죽기 아니 믄 남의 집 문전걸식을 하게 된 이 정상을 번연히 네 눈으 루 보구서두 다시 또 가슴을 피워 주자구 드니, 니두 목석 이 아닌 바에야! (눈물을 씻고, 間[간]) 삼순구식을 하더래 두 마음이나 편해야 며칠 남지두 않은 여생을 명대루나 살 들 않느냐! 정석 자식 된 도리라든지 인정이라는 걸 생각하면 저두 그야 송 구스럽기두 허구, 차마 못할 노릇이지요! 그렇지만, 그렇다 구서 어디. 고씨 이 천지에 사람이 너 하나뿐이길래, 해필. 정석 이 천지에 저 같은 자손을 두구서 가슴을 태우는 부모네가 유독 우리 부모뿐이겠어요! 형석 좌우간 어서 전보나 좀 치게 하려므나? 정석 네에. (間[간], 여전히) 그리구, 전 떠나구요. (間[간]) 내 원이 놈 즈이세 모잘라컨 즈이 외가루 보내겠어요! 고씨 점점, 헌다는 소리가! 정석 기집자식을 친정살이 외가살이루 보낸다는 게 치사스럽기두 허구, 즈이루두 못할 노릇이구 하긴 하지만, 지끔 이 지경 이 된 집안에다가 떼쳐두구서 저만 훌 떠나버리기두 무책임 한 짓. (間[간]) 전과두 달러서 늙으신 부모 댈 심 없이 된 형님네가 어떻게 그 부담까지 하시우? (間[간]) 요행, 끼니 는 굶잖는 모양이니깐 가서 눈치밥 좀 얻어먹구 살래지요! 고씨 (강경하게) 넌 내 자식이래서 그렇게 다아 함부루 거천을 해두 고만인 줄 알어두 난 내 소중한 내 손자자식을, 참, 데리구 앉어서 굶길 망정 천하 없어두 외가살인 안 보낼 테 니, 그리 알어라! 정석 건 또, 자량해서 하세요! 구태라 그렇게만 한다는 건 아니 니깐요. 전 머, 이래두 고만 저래두 고만, 불필히 참견하잘 것두 없는 노릇이니깐요! 실상은. (하수의 옆채 사이께로 천천히 걸어간다) 형석 지끔 곧 치게 해여! 정석 네에. (퇴장) 형석 (우두커니 먼산을 바라다보면서 방백) 날이 이렇게 가물든 지 해서 그해 농사가 잘 되구 못되구 하게 되는 고팬다 치 면 미두가 세월이 좋아서 더러 큰수를 잡는 수두 있다드구 먼서두! (한숨) 요행, 이 으런이. (인원과 대원, 상수의 차면 밖으로부터 총총히, 그러나 원기 없이 등장. 둘이 다 같이 경성 어느 관립고등보통학교의 제복 제모로 차렸고, 손에는 바스켓 하나씩 들었다.) 형석 ┐ ┌ 웬일들이냐? │(동시) │ 고씨 ┘ └ 웬일들이냐? (형석과 고씨, 다음 순간 놀란 기색이 물 씨듯 쓰이고 흐린 얼굴로 갈리면 서, 인원과 대원이 시무룩하니 말없이 가까이 걸어들어오고 있는 양을 바라 다만 본다. 인원과 대원, 토방 앞에서 잠깐 주춤거리다가 이내 마루로 올라 가, 고씨한테 우선 절을 한 자리씩 하고. 그 통에 고씨는 도로 자리에 앉 고. 형석, 관객석을 향해 선 채 한손은 허리를 짚고서 넋을 놓고. 인원과 대원은 형석에게 절을 하지 못해 서서 잠깐 망설이다가 그대로 관 객석을 향해 나란히 앉고. 일동, 한동안 침묵) 고씨 (손 바로 앉았는 대원의 머리를 어루만지면서) 쯧쯧! 시상 의. 형석 (이윽고 돌아서서는, 또다시 한참이나 두 아이를 건너다보 다가 고개를 끄덕끄덕) 게? 인원 ┐ │ (고개를 숙이고 앉아, 무언) 대원 ┘ 형석 그래서? 인원 ┐ │ (저희끼리 서로 돌려다보다가 로로 고개를 숙이고 무언) 대원 ┘ 형석 응? 인원 하숙집 쥔이. 형석 못하겠다구! 인원 한 달치두 아니구, 석 달치씩이나 밀린 걸, 가을꺼정 기대 리는 게 다아 머냐구. 형석 (한숨, 돌아선다. 침통한 얼굴) 고씨 쯧쯧! 가엾어라! 이것들이 공불 갔다가 밥값을 못 내서 도 루 이렇게 쫓결 오다니! (목이 멘다) 에구 가엾어라! (눈 물) 인원 (입술을 야긋이 씹고 있다가 번뜻이 고개를 치들고는) 작은 아버지! 형석 (그대로) 오냐! 인원 (잠깐 벼르다가) 전 이따가 밤차루 도루 올라가겠어요! 대원 난두 따라갈걸! 머. 인원 대원인, 저 혼잔 안 내려올 령으루 해서, 데리구 왔으니 깐, 얼마 동안 집에서 자습이나 하믄서 기대리구 있게 하세 요! 대원 왜 그래? 난두 같이 가서, 고학할걸! 형석 (돌아서면서) 무슨 소리들이냐? 인원 전 앞으루 일 년두 다아 못 남었으니깐, 고학이래두 해서 마저 마치겠어요! 대원 난 고학하믄 못쓰나? 머. (갑자기 주먹으로 눈물을 씻는다) 형허구 같이 할래! 난두. 인원 넌 아직 못해요! 넌, 내, 인제 졸업하구 나서 취직해서 학 비 대주께시니 그동안 기두르구 있는 거야! 대원 싫여! 난두 같이 가서. 고씨 건 무슨 소리들이냐? 형석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돌아선다. 눈엔 눈물이 글썽글썽) 고씨 으응? 무얼 어떡헌다구? 대원 난 떼놓구, 형만 도루 가서 고학한대애! 고씨 고학? 대원 약두 팔구, 호야만주두 팔구, 그렇게 해설랑 돈 벌어가믄서 공부하는 거 말유! 인력거두 끌구. 고씨 오온! 느이가 어디라구 그 짓을 하느냐? 오온 게 어디 당 한. (머슴, 상수의 차면 밖으로부터 허얼헐 숨이 차 가빠하면서 급한 걸음으로 등장) 머슴 ┐ ┌ 작은서방님! │(서로) │ 형석 ┘ └ 웬일이여? 머슴 얼른 좀! 형석 응! (마당으로 쫓아내려가면서) 왜? 머슴 물 다아 뺏겨유! 형석 어느 놈이? (두 주먹을 불끈, 상수의 차면께로 급히 나가면 서) 하, 이놈들! 살인나구 싶은가 보다? (고씨, 인원, 대원 당황하여 토방으로 내려서고) 고씨 애야! 남허구 시비할세라! 인원 할머니! 나, 나가 볼래여? 고씨 그래라! 어서, 좀. 대원 난두? 고씨 너두! 애여 남허구 시빌랑은 마라아? (인원과 대원, 구두를 재빨리 집어 꿰고는 상수의 차면 밖으로 마악 퇴장 하는 형석과 머슴의 뒤를 쫓아 마당을 달려나가고. 불의의 요란한 동요에 놀란 여인들과 아이들, 대청마루 안방의 뒷문 혹은 옆채 사이로 해서 우우 하니 몰려나오고 급히 막) 제 2 막 제 1 장 〔무대〕 포치를 중심으로, 아래층 중앙 정면의 일부분만 보이는 큰 목제 양옥. 포 치의 앞기둥엔 인천미두취인소(仁川米豆取引所)라는 간판이 붙었다. 포치에 서 좌우로는 넓은 간격을 두고 장방형의 상하식 좁은 유리창이 각각 두 개 씩. 오전 열한시반, 즉 전장지(前場止)의 바로 전각(前刻), 막이 열리면, 미두장 안으로부터는 “생고꾸(千石[천석])야로오!” “산겡고햐꾸(三千五百石[삼천오백석])돗다!” “핫셍(八錢[팔전])야로오!” “고셍(五錢[오전])돗다!” 이러한 몇가지의 드높은 아우성을 중심으로, 그러나 그 규성들이 실상 무 슨 소린지 언뜻 분간을 할 수가 없을 만큼, 다수한 군중의 와글와글 흥분하 여 떠들고 부르짖고 하고 요란스런 둔소음(鈍騷音)이, 정신 아득하게 들려 나오고. 포치 안의 활짝 열린 정문으로는 의표(儀表)가 비교적 깨끗한 미두꾼들이, 더위와 잔뜩 긴장한 얼굴에 겸하여 바쁜 걸음으로 연락 부절 들고 나고 하 고. 일변 무대에는 양복짜리, 모자 쓴 두루마기짜리, 깎은 머리에 탕건 받 쳐 쓴 갓짜리, 상투 꽂은 마른신짜리, 맨머리의 동저고리짜리, 감발에 짚신 신은 패랭이짜리, 게다 신은 유까다짜리, 이렇게 모두 형형색색이로되 그 죄다가 헙수룩하니 의복은 땟국과 땀으로 휘감기고 얼굴엔 윤기가 없고 한 데에 완전히 일치가 되는 하바꾼, 돈 떨어진 마바라(小資本米豆[소자본미 두]꾼), 옥관(玉觀), 구경꾼의 한떼 군중이 미리서 등장해서 있어가지고 서 로들 분주히 납뛰고 지껄이며 떠들고 하는 중에도 하바꾼들은 이 구석 저 구석, 둘씩 셋씩 모여서서 고개를 처박고 쑥덕쑥덕하면서 간혹 돈을 서로 주고받고 하고 돈 떨어진 미두꾼들은, 혼자서 혹은 무더기로 넋을 놓고 우 두커니 미두장을 바라다보고 섰다. 옥관(玉觀)은 점잖스럽게 부채질을 하면서 오락가락. 구경꾼들은 무표정하게, 어칠버칠하면서 과연 구경을 하고 있고. 그리고 다시, 치열린 네 개의 유리창에는 창마다 하바꾼이며 돈 떨어진 미두꾼 혹 은 구경꾼이 3, 4인씩 4, 5인씩 죽자꾸나 매달려서 장내를 들여다보고 있 고. 그들의 머리 너머로는, 장내의 한참 복작거리는 데후리의 입회광경(立 會光景)이 약간 얼찐 보이고. 이상, 약 1분 동안 소란(騷亂)이 계속이 된다. 그 1분 동안이 지나고 나면 장내로부터 별안간 딱따기 소리가 모질게 울리 면서 씻은 듯 ‘얏다’ ‘돗다’의 아우성은 뚝 그치고, 군중이 웅성거리며 떠드는 둔소음 한결 더하다가, 다음 순간 일군의 초라스럽지 않은 미두꾼들 과 간간이 손에 금절표(金切票)를 쥔 바다지들이며 조쓰깨들이 흥분과 더위 에 헉헉 숨차 하면서 포치의 정문으로 메어질 듯 와아하니 몰려나온다. 하 되, 그 많은 얼굴들이 만족 아니면 실망, 이 두 가지 표정으로 판연하게 갈 려서 통일이 되어 있다. 뒤로 뒤로 연해 쏟아져 나오는 장내의 군중은 다시 장외에 있던 군중과 한 데 합쳐가지고 혹은 헤어져가면서 혹은 그대로 서성거리면서, 입입이 떠들 고 지껄이고 불러내고 하느라고 무대는 발끈 뒤집히는 가운데 “오천 석 방(放)했네!” “통 몇 정(丁)야?” “긴상, 즘심 한탁 써요!” “대판은 팔전 도매.” “전장에 도통 오백사십 정이 어!” “돼지꿈도 별수 없군.” “전라도가 김만경(金萬頃) 뻘이 적지(赤地)래!” “이건, 어따 대구 도활 불러?” “제엔장! 인생이 참으로 여반장이로군.” “옥관이 제가 실상 알긴 쥐뿔이나 무얼 알어?” 등의 소리가 선후 없이, 그리고 유난히 높다. 이상, 약 20초 이내로 무대 급히 암전) 제 2 장 〔무대〕 미두취인점 마루상의 사무실. 바닥은 시멘, 후면은 벽, 상수는 유리창의 외면에는 나무창살. 나무창살에는 발을 쳤다. 하수는 전면으로 다가, 출입 하는 문, 문지방에는 염창(簾窓), 문을 들어서면 후면을 향해 이층으로 급 하게 올라간 좁다란 층계. 후면의 벽 앞으로는 관객석을 향해 중앙쯤에 사무용 탁자가 한둘, 그 좌우 로는 대형의 금고를 비롯하여 문서고가 두어 개 적당히 놓였다. 탁자엔 잉 크, 필갑 등 문방구가 간단하고 안락의자가 딸린 걸로 보아 주인의 소용임 을 알 수가 있다. 상수의 유리반창 앞으로는 하수를 향하여 다시 사무용 탁자가 제각기 문서 고와 장부궤(帳簿櫃)를 등지고서 나란히 두 틀, 탁자 위에는 제마다 탁상 전화와 머리가 파묻힐 만큼 장부가 그득히 꽂힌 장부대와 기타 잡다한 문방 구. 전면으로 치우쳐 중앙쯤엔 승객용의 원탁, 의자를 서너 틀 둘러놓고, 탁자 위엔 신문과 찻종들. 후면 벽에는 미두 시세의 등락을 그린 괘선(罫線)이 전면에 빈틈없이 붙고 한가운데 기둥으로 높직이, 둥근 괘종이 걸렸고. 층계 아랫바닥에는 구두, 편리화, 그리고 흑간 짚신과 게다와 마른신도 섞 인 다수한 신발이 잡연히 놓여 있다. 무대 급히 밝아지면서, 시계는 열한시 사십분을 가리키고. 웃저고리와 와이샤쓰까지 벗어붙인 사무원 갑·을, 갑은 펼쳐논 장부 위에 고개를 숙이고 한참 기입하고 있고 을은 손에 펜을 쥔 채 전화를 받는다) 사무원 을 네에네! 오천 석이요! 알겠읍니다! (빙글빙글) 간밤에 참, 좋으시던데요? (間[간]) 네? 아아 아하하하! 거 참, 피차 일반이드랬군요! 하하하! (間[간]) 네에네, 그럼. (전화를 끊고 펜을 놀리면서 방백) 먹는 사람은 이렇게 듬쑥듬쑥 먹 는데, 맨 그저 망했단 소리지 부자 났단 소문은 없으니 어 떻게 된 셈이야! 도대체. 사무원 갑 따 먹질 못하구서, 그 댐에 가서 도루 토하구래야 마니깐 그럴밖에! (전화벨 소리. 통화기를 집어 대고) 네에. (間 [간]) 아아! 젠상이십니까? (間[간]) 전장도메 삼전입니다, 삼십사원 오십삼전 (間[간]) (주인의 탁자를 들여다보고) 방금 아까 나가섰는데요. (間[간]) 네에네, 그럼 안녕이. (전화를 끊고 도로 일을 한다) (미두 손님 갑, 사무원 갑이 전화를 받기 시작할 때 등장, 이내 2층으로 올라가려고 층계 밑에서 신발을 벗는다. 깨끗한 신수에 만족스러하는 표정) 사무원 을 (마치 고개를 쳐들고, 반겨) 여보, 김주사? 미두 손님 갑 (돌려다보고, 의미 있이 싱글벙글 웃으면서, 무언) 사무원 을 (같이 웃으면서 눈을 흘긴다) 왜 지끔 이층으루 실끔 올라 가 버릴 령으루 이래요? 미두 손님 갑 그럴 리가 있나! 사무원 을 어떡허실 테야? 이따가 저녁에. 미두 손님 갑 아므렴! 장부일언 중천금인데! 허허허. (바다지 손에 금절 표(金切票)를 쥐고, 염창을 밀치며 들어오다가 미두 손님 갑에게 가로막혀서 그대로 멈춰 선다) 사무원 을 어디 봅시다! 바다지 (미두 손님 갑의 어깨를 떠밀면서) 비켜나요! 이건. 미두 손님 갑 (고꾸라질 뻔하다가) 여보아, 약질 괄시 너무허구려! 바다지 (상수로 걸어오면서) 김주산지 미역주산지 수잡는 꼴 보기 싫여, 난 이놈의 바다지 고만 해먹을 테야! 미두 손님 갑 (층계를 딛고 올라서면서) 그러지 말구, 좀 친합시다그려! 바다지 말루만! 미두 손님 갑 그리게 이따가 저녁에 다아 응? 바다지 혹시 그렇다면 모르거니와. 미두 손님 갑 (뒤통수다가 주먹질을 하면서) 에구우야 마마손님! (이층으 로 퇴장) 바다지 (중앙의 원탁으로 가서 걸터앉으면서) 이 박원석일 어떡헌 다? 아신데! (담배를 붙여 문다) 사무원 을 그 사람 참 딱해 못 보겠어! 사무원 갑 사정이야 딱하지만. 사무원 을 이번이 아마 최후 결단인 모양이지이! 사무원 갑 (전화를 받는다) 네에. (間[간]) 아아, 강참봉이세요? 네에 네? (間[간]) 삼천 석이요! 네에네, 그럼 (전화를 마치고) 최후 결단이나마나, 끊어야지! 사무원 을 끊긴 끊어야지! 바다지 그리구 또오, 멋이냐 이, 전라도 광주서 왔다는 상투쟁이. (間[간]) 거진거진 돼가는데! 사무원 을 거 참, 왜 안 와? (間[간]) 추증금을 더 너라구 하던지, 끊 어 버리던지 해야 할 텐데! 바다지 웬 게 돈이 남었을라구? (間[간]) 흥! 샌님이 들어단짝 이 천 원 돈을 홀라당 불어먹었으니이! 사무원 을 축현정거장 연못에 물이 몇 방울 또 부웃는다? 바다지 국으루 자빠져서 농사나 지여먹구 사는 게 아니라 끙! 백제 글쎄, 귀두 여태 안 뺀 샌님네들이, 버얼써 대가릴 깎은 놈 의 돈을 먹어보자구 덤벼드니! 미두가 아무리 투기사업이요 재수노름이기루손. 사무원 을 시굴놈이 서울놈 사흘을 안 속혀먹으면 배탈이 난다네! 바다지 미두가 속혀 먹는게 왕이란다면, 그 제길 석 달 안에 한 백 만원 잡겠네! 사무원 을 기껏해야, 남 잘 속혀먹을 줄 안다는 자랑이군. (원석, 하 수의 창을 밀고 조용히 등장. 흰 린네르 쓰메에리 양복에 맥고모자를 쓰고 검정 아사고무 구두를 신었다. 모습은 형석·정석 들과 역시 같은 모습이나, 살이 없고 강파르고 체집과 키도 자못 단소하다. 그의 기상은 그러나, 방금 그 초췌하고 추렷한 신색이며, 드레고 휘감기는 양복 하며 매우 초라한 행색은 행색이라도, 두릿하니 트인 얼굴 의 윤곽, 광채나는 안정, 꽉 다문 입초리 등 전체로 언뜻 침노하기 어려운 품격과 위엄을 갖추고 있다) 사무원 을 (바라다보고) 얼마나 더우세요? 박주사. 사무원 갑 (뒤미처, 같이) 날이 대단합니다! 원석 (원탁 앞으로 가면서, 천천히) 거 웬, 늦더위가! 바다지 남도 절러루 농형이 말이 아닌 모양이죠? 원석 아마 그런 모양이죠? (의자에 앉아, 모자를 벗어놓고 부채 질을 한다) 쥔장은 어디 가섰나요? 사무원 갑 네에. 손님허구 함께 나가섰는데, 아주 즘심을 잡숫구 들어 오실려는지이? 원석 (시계를 올려다보고 나서, 방백) 열한시 사십분이라? 으음 (間[간]) 새루 한시차가 있겠다? 사무원 갑 어딜 가시나요? 원석 (이윽고) 네에. 바다지 (게으르게) 때가 돼오니 속은 잊어버리잖구서 허추울하구 나! 사무원 을 즘심 좀 사겠지? 바다지 자네두 거, 꼬랑지 없어질려거든 더러 즘심이래두 사구, 다 아 좀 그래 보게? 사무원 을 누가 한 말인데? (전화를 받는다) 네에네 (間[간]) 아아, 분상이세요? (間[간]) 전장도메 삼전입니다, 삼십사원 오십 삼전. (間[간]) 네에네, 오천 석이요? 네에네 (間[간]) 네 에네, 그럼. (전화를 끊으면서, 방백) 문뚱뚱이가 담보 늘 었다! 원석 (사무원 갑더러) 그러면, 으음 (間[간]) 쥔장은 언제 들어 오실는지 조만이 없군요? 사무원 갑 글쎄요! 수이 들어오실 겝니다마는. (間[간]) 술을 시작하 면 영영 세월이 없는 양반이 돼서, 혹시 또. 원석 그러면, 으음(間[간]) 내것이 아시가 적잖이 났는데, 으음 (間[간]) 걸 끊어버리시구. 사무원 갑 (이윽고) 네에! (間[간]) 미안합니다! 다아 참, 박주사루 말하면 일년 넹겨, 단골루 기시던 손님이구 하니깐, 가개서 두 어떡해서든지 좀 더 편의를 보안 드려야 하겠는데. 사무원 을 거, 참, 박주사 웬일이십니까? 네에? (間[간]) 번번이 이렇 게 손만 보시구! (間[간]) 어떡허세요? 원석 허! 천지망아요, 비전지 죄올시다! (間[간], 사무원 갑더 러) 그리구, 내가 좌우간 고향을 좀 다녀와야겠는데, 돈두 마련을 해야 하련과 집안에 여러가지루 각다분한 일이 생겨 가지굴랑, 누누히 기별이 오구 전보가 들어닿구 해서. 바다지 진소위 화불면행이란 격이시군요? 원석 참 그래요! (間[간]) 불가불 그래서 시급히 다녀는 와야겠 는데 (사무원 갑더러) 허! 부끄런 말씀으루, 내가 시방 수 중에 푼전이 없으니다그려! (間[간]) 염치는 없지만, 날 삼 십 원만 좀 취해 주십시요! 사무원 갑 (난처해서, 모호하게) 네에! (間[간]) 허! 원석 쥔장이 마침 기섰드라면 좋았을 것을 공교히 출입을 하시구 서 기시질 않아서. 사무원 을 좀 기둘러 보시죠? 이따가 늦더래두 들르시긴 들르실 테니 깐. 원석 한시차루 떠나야겠어서. (間[간]) 모레 오전 안으루 불가불 집엔 당도해야 할 사정인데, 중로에 또 서울허구 어디허구 두어 군델 들러서 긴히 볼일을 보구 나서, 집으루 가긴 해 야 하겠구, 그래. 바다지 (사무원 갑더러) 어떻게, 그렇게 좀 해 드리슈그려? 참, 박 주사야 오란 단골손님이겠다, 쥔장이 안 기시더래두 가개에 서 고만껏쯤야, (間[간]) 그렇잖어요? 외려 쥔장이 기섰으 면, 말씀하시는 것 외에, 하다못해 애기들 모치떡이래두 사 다가 주시라구, 따루이 참! 돈 십 환이이래두. 사무원 갑 (생각하다가 원석더러) 그럼 이럭허시지요. 찻시간까지 기 둘러 보시다가, 쥔장이 그 안에 둘오시면 더욱 좋구. 그렇 지 못하면 그땔랑은 내라두 가개서 처릴 하는 걸루다가. 원석 건 좋두룩 하세요! 난 아무렇게 해서던지 한시차루 떠나기 만 하면 그만이니깐요. (間[간]) 하여간 염치가 없읍니다! 대다 못해서 말을 내긴 냈어두. 사무원 갑 천만에! (間[간]) 으음, 그러면 (間[간]) 으음, 혹시 어디 볼일래두 기시거들랑 그동안에 잠깐 다녀오시지요? 앉어서 기대리기두 갑갑허구 하실 테니. 원석 무어 별루 볼일두 없읍니다. 사무원 갑 아아, 그러시면 머, 난 또, 행구 같은 거래두 가지구 떠나 시자면 사관에두 들러오서야 할 것 같구 해서. 원석 사관에선 벌써 어제 아침에 떠나는 양으루 하구 나왔지요! (곰곰이) 것두 참 세태인심이라, 전에 있던 사관은 일 년이 나 눌러서 유하구 있었으니깐 설마 그렇던 안했겠지만, 아, 지난번에 새루 든 집은 두어 달 밖엔 안된대서, 식대가 한 달 가량 밀리니깐, 좀 좋잖은 내색을 하더군요! 허허! (間 [간]) 그래, 오늘 내일 간에 아무래두 떠나기는 떠나야 하 겠구 하기에, 어제 아침엔 주인자를 청해서, 며칠 고향엘 다녀오겠으니 그동안 행구나 맡아가지구 있으라구 일르구 서. (원석의 이야기가 끝나기 조금 전, 망건 쓰고 갓 쓰고, 솜버선에 마른신에 춘포(春布) 두루마기를 떨쳐 입은 미두 손님 을, 하수의 염창을 밀고 끼웃 이 등장. 삼십이 넘었을까말까, 얼굴엔 어떤 건사할 수 없는 기쁨으로 하여, 흐물흐 물 웃음이 절로 자꾸만 흐물거린다) 바다지 (먼저 알아보고서, 방백) 흥! 광주 활량 행차하섰군. (문득 짯짯이 바라다보다가, 미흡스럽게) 아니 저 샌님이! 사무원 을 어서 오십시요! 바다지 (진정으로, 방백) 심상찮어! 한나절 만에 이천 원을 홀딱 날리더니! 미두 손님 을 예에! (잠깐 어릿거리다가 헤벌쭉 웃으면서, 가까이 온다) 즘심 요구나 덜 허러 나간 게라우? 바다지 (더욱) 저거 보겠지! 정말 실성했나 바! (사무원 갑·을과 원석, 미상불 그렇다는 듯이, 차차로 의아스러하는 눈으 로 미두 손님 을의 거동을 유심히 여새겨 보아쌓는다) 사무원 을 마침 잘 오섰습니다! 그렇잖어두 시방. 미두 손님 을 얘애! 저두 마침. 사무원 을 (바다지와 눈이 마주쳐, 빙긋 웃으면서) 저어, 훗장버틈은 중금을 더 넣어주서야겠읍니다? 미두 손님 을 애애? (곧이를 안 듣고, 빈들빈들) 보징금을 느으라구? 사무원 을 네에. 미두 손님 을 궤니 시방, 날 놀려먹을라고! 헤헤헤! 일동 (확신한 얼굴로, 면면상고) 미두 손님 을 어서덜, 점심 요구나 허러 나가게라우! 아 미두를 히여서 당장의 돈을 근 이천 원이나 땄넌디, 즘심 한턱 안 내서사 쓰겄어라우? 건 참, 인사불성이지! 사무원 을 (뻐언히) 이천 원을 따다뇨? 미두 손님 을 (희떱게) 그럼 안 땄어라우? 이천 원 징금 내고서나 쌀 삼 백 석을 팔었넌디, 오원 사십전이 올랐으닝께로, 삼오십오 일천오백원 허고. 사무원 을 팔었으니깐 손을 했지, 어떻게 땁니까? 미두 손님 을 (비로소 일말의 불안한 빛이 드러나면서도, 자신있이) 팔었 응께로 땄지라우. 사무원 을 하, 이런 답답한! 바다지 오오! (고개를 끄덕끄덕) 인제야 알았어! (미두 손님 을더 러) 여보, 이노형? 미두 손님 을 얘애? 바다지 노형네 고장에선, 돈 가지구 싸전에 가서 쌀 사오는 걸, 쌀 팔어온다구, 그리지요? 미두 손님 을 그러먼이라우! 그게 왜, 돈 각고 싸전으로 가서 쌀 사오넝 것이간디라우? 쌀 팔어오넝 것이지! 바다지 그래, 그 셈만 대구설랑 여기 와서두, 돈, 이천 원 내놓면 서 쌀 삼백 석 팔아주시우, 했겠다요? 미두 손님 을 그러먼이라우! 그랬응께로 내가 시방 쌀 삼백 석을 각고 있 는 심이지라우! 바다지 (버럭) 각고 있긴 쥐뿔을 각고 있어? 미두 손님 을 왜라우? 바다지 팔어달랬으니깐 방할밖에! 미두 손님 을 방허다니라우? 바다지 팔었어! 정말 팔었어! 팔맷자(賣字)루 팔었어! 논 팔구 밭 팔구, 집 팔구, 기집 팔구 선영 뼉다구까지 팔구 하듯기, 팔았어! 팔아! 미두 손님 을 (사색이 질려 오다가) 참말이라우? 참말루, 파(더듬는다) 파. 바다지 한 이삼백 원 남은 것 도루 찾아가지구서, 얼른 봇짐 싸요! 싸가지구 내려가서 타구난 팔자대루 농사나 지역먹구 살어 요! 괘니, 어름어름하다간 논 팔구, 밭 팔구, 기집 팔구 선 영 뼉다구까지 팔어먹군, 바가지 하나 뽄새 있게 차구 나설 테니. 미두 손님을 (퍼르르하여) 아니, 그런 경오 읎지라우! 그런 경오 읎어! 암만 그리두, 나는 쌀 삼백 석 팔었응께로 돈 내누와라우! 돈. (어쩔 줄을 모른다) 돈 내누와라우! 보징금 이천 원허 구, 내가 딴 놈 일천육백 원 각수허고, 당장 내누와라우! (와들와들 떨면서) 어서 돈 삼천칠백 원 내누와라우! (이 사람한테로, 저 사람한테로) 어서 돈 내누와라우 어서 당 장! (間[간]) 권연시리 돈을 안내누왔다가넌, 참, 큰일 나 지라우! 내가 안 받고 가만 있을 종 알어라우? 어서 당장 내누아라우! 그게 어떤 돈이간디라우! 당신네 말짝으로, 논 팔고 밭 팔고 히여각고 온 돈이라우! 왜 이리어라우! 시방 날 쫑애로 알어라우? 원석 (무연히) 허! 노형이나 내나! 바다지 인제야 옳게 미치는군! 미두 손님 을 (그대로 계속해서) 돈 내누와라우! 돈(차차로 정신없이 납 뛴다) 날 죽는 꼴 안 볼라걸랑 당장 돈 내누와라우! 논 팔 고 밭 팔고 헌 돈이여라우! 당장 어서 내누와라우! 내 돈, 내누와라우! 내 돈! (서서히 내리고 있던 막, 한꺼번에 급히 다 내린다.) 제 3 막 제 1 장 〔무대〕 시골 철도연변의 간이역, 전면은 선로, 후면은 좁다란 장방형의 낡은 간이 역사, 배경은 늦은여름의 전야와 먼산 무대 뒤에서는 간간이 말방울 흔드는 소리와 마부의 말 달래는 소리. 아침나절이 훨씬 겨워서, 막이 열리면, 제 3 막 제 2 장 적과 같되 양복은 드렌 품이 훨씬 더한 원석이 역사 안의 쪽마루에 가서 관객석을 향해 걸터 앉았고. 상수의 역사 앞 기둥엔, 수수하니 의관을 차린 형석이, 하수를 향 하여 등을 기대고 섰고. 형제가 다같이 더할 수 없이 어둡고 심각한 표정이고, 우두커니 한동안 서 서 말이 없다. 원석 (이윽고 깍지손으로, 안았던 무릎을 바꾸어 안으면서 푸뜩) 아버님은 그래서? 어제 저물게 당도하섰어? 형석 (한눈을 파는 채) 네에. 원석 (방백) 노인이 괜히 고생을 하시구! (間[간]) 사관에다가 말은 그렇게 하구 나왔어두, 그날두 종일 인천 있었구, 그 이튿날두 점심 때가 지나서 한시차루 떠난 걸 갖다가! 형석 (무언) 원석 (잠시 무언) 새말 강전이게는 갔더니, 무어라구? 형석 형님을 만나겠대요. 형님이 오서서 말씀을 하시면, 자기 돈 을 더 주마구, 이번 저당일랑 할라 말라구. (間[간]) 놈이 단단이 시방, 그 논이 욕심이 나가지구서! 원석 욕심두 날 만하지! 사천 평에서 일백이삼십 석이 항용 나는 논이니. (間[간]) 어떻게 은행에다가 밀어넣구서 강전이게 선 물러가지구, 한 이십 년이구, 연부루 갚어나가게 했으면 조렸만서두! (間[간]) 은행에서 그걸 이천오백 원투룩 주덜 않을 테니! 형석 (한숨, 무언) 원석 (담배를 붙여 문다) 형석 가서요! 인전 어서. 시장두 하실 텐데. 원석 괜찮다! 아직. 형석 가시면서는 말씀 못하세요? (무대 뒤로 대로) 장서방? 마부 (소리만) 예에! 원석 아직 가만 좀 있으래두! 마부 (하수로 등장, 굽신) 예에? 원석 아냐! 가서 잠깐 더 좀 기대리게! 마부 예에. (퇴장) 원석 (침음하다가) 나는 이 길루 그대루 군산으루 갈 테니, 네가 집으로 가거라! (한숨) 형석 네에? 원석 (무언) 형석 일껀 내려오섰다가, 그대루. 원석 (침통히) 무면도강이란다더니, 차마 얼굴을 들구 집엘 들어 갈 면목이 없구나! (間[간]) 그저끼 인천서 떠나가지구, 적 이나 하면 돈 일이 백 원이라두 변통이 될까 하구서, 서울 루, 전주루 휘익 들러본 것이 다아 그만 낭패를 해, 그래두 집엔 와보아야겠단 맘으루 미리서 전보두 쳐, 오늘은 예까 지 와서 차를 내려, 너를 또 만나! (間[간]) 막상 앉어서 고옴곰 생각을 하자니, (한숨) 도시에 머리를 두르구 집 문 전을 들어설 염치가 없구나! 형석 쯧! 남인가요! 원석 막이, 부모 제형간이며 처자식들한테야 허물이 없으니 불고 염치를 한다구, 인근 동네, 동네 사람들 앞에서야, 남 한테 야, 진정이지 무슨 면목이며 무슨 염치란 말이냐? (間[간]) 동네서들두, 내가 오기만 오는 날이면 일 다아 무사히 모면 하는 줄루 알구 있을 테지? 보나마나. 형석 (무언) 원석 또오, 내 면목두 면목이려니와, (한숨) 당장 집에서는 그 못 당할 일을 당허구들 있지를 앉느냐. 세간을 끌어내가! 경매를 불러! (間[간]) 까아맣게들 날만 바라구 기대리지를 않느냐? 돈을 해가지구 와서 떠떳이 일을 파여놓려니 하구 서. (間[간]) 그런데, 번연히 빈손을 쥐구서 불쑥, 들어서 는구나 빈손을 쥐구서! 형석 (한숨, 무언) 원석 태산같이 믿구 있다가, 오죽이나들 낙망이 되며, 그러니 차 마 애차라서 그 낙담실망하는 정상을 어떻게 본단 말이냐? (間[간]) 제일, 아버님께 죄송스런 말이야 이루 다아 이를 것두 없는 노릇이지만. 형석 (무언) 원석 (한숨) 어채피 집안사람들루 하더래두, 이왕 당하는 바엔 차라리 내가 있구서 당하기보담 우선 낙심이 더얼 돼두 더 얼 될 것이요, 또오 남이 보매두 내가 오덜 안해서 부득이 저렇거니 여길 텐즉, 은연중 허물이 제풀에 다아 내한테루 밀려서, 역시 더얼 창피두 한 것이요, (間[간], 한숨) 폐일 언하구서, (몸을 일으키면서) 말, 네가 타구서 들어가거라! 형석 (무언, 한숨) 원석 나는 예서 그대루 기대리다가 군산으루 가서 쯧! 볼일두 있 구 허니, 이삼 일 있다가, (間[간]) 모리나 글피쯤 집으루 가마! 형석 (넋을 놓고 서서, 무언) 원석 어서, 널랑은 (문득 아우의 얼굴을 돌려다보고는, 하두 그 절망적으로 침통한 데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외면을 하면 서 한숨) 형석 (훠얼씬 있다가, 그대로 한눈을 파는 채, 푸뜩푸뜩 혼자엣 말로 조용히 탄식) 어떻게나 하면 좋아요! 어떻게나 하면 좋아요! 집안을 자차 어떻게나 하면 좋아요! (눈물이 어린 다) 원석 (한숨, 무언) 형석 (무언) (두 사람, 제각기 넋을 잃은 듯 우두커니 먼산을 바라다만 보고 섰고, 무 대 고요히 암전) 제 2 장 〔무대〕 제 1막과 동일. 시각은 제 1 장과 거진 같은 시각으로, 사건이 진행중인 채 급히 무대가 밝아지면. 정면으로 안채의 토방에는 고씨가 인원과 대원을 데리고 섰고, 하수의 옆 채 사이에는 최씨와 김씨와 은순을 업은 오씨와 소저가 모여 섰고. 상수의 차면 앞으로는 경매인 갑·을과 2, 3인의 인부가, 혹은 섰고 혹은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하고. 마당 가운데로는 박진사가, 가방을 멘 집달리를 데리고 섰고. 박진사는 장자 원석과 비슷하니 왜소한 체집이나, 딸 소저가 많이 닮은 듯 이 성미 괄괄하고 괴퍅스러 보이는 얼굴이다. 차림새는, 커다란 삼각관에, 모시적삼과 도리사 고의에 흰 마른신을 신었 고, 앞과 옆에서 털럭거리는 큰 귀주머니 풍안(風眼)집이 유표하다. (약간 주기를 띠었고) 박진사 (집달리를 달래느라고) 자아, 여보시우? 이 양반? 집달리 (지르퉁하니 딴 데를 보고 서서) 말씀하세요. 박진사 예서 이럴 게 아니라, 자아, 절러루, 사랑으루 나갑시다! 이왕 채려 내간 술상이요, 허니. 집달리 술은 끌세, 먹을 줄 몰라요! 술 대접 받으러 온 사람두 아 니구요! 박진사 허어, 사람이 어디 그렇두룩 빡빡해서야 쓰우! 젊운 친구 가. 집달리 (버럭) 내가 왜 빡빡해요? 댁에서 답답하게 굴지. 박진사 거, 기왕 참던 길이니 죄끔만 더 참아주면 될 게 아니요? 집달리 아침 여덟시버틈 오정이 돼 오두룩 여태 기대려 드렸으면 고만이지, 그 위에 다시 더 어떡허란 말씀예요? 박진사 지금 곧 와요! 하마 당도해요! (방백) 거 워너니, 무얼들 하느라구 여태들 안 온단 말이냐. (둘레둘레) 거 누구 없느 냐? 머슴 어디 갔느냐? 머슴. 고씨 머슴 들에 나갔지요! 박진사 이놈은? 이놈, 꼬마둥이는? 고씨 그애두 같이 들에 나가구요. 박진사 거 원, 오늘 같은 날은 하나나 집에 있는 게 아니라(마침, 인원·대원을 보고서) 오오! 느이라두 뻐언이 그러구 섰지 만 말구서, 저어 동구 밖으로 좀 나가 보렴? 응? 인원 (선뜻) 네에! (마당으로 내려서면서 상수의 차면을 향해 급 히 걸어나간다) 박진사 저어 동구 밖까지 나가 보아라? 응? 인원 네에! 박진사 애비가 말 타구 올 테니, 얼른 오라구 일러라? 손님이 시방 기대리신다구? 응? 인원 네에! (퇴장) 집달리 (박진사의 하는 양을 물끄러미 바라다보고 섰다가, 방백) 내온! 박진사 인전 곧 오게 됐소이다. 저놈을 내보냈으니깐, 인제 오라잖 어서. 집달리 누굴 어린애루 아나베! 박진사 곧 당도해요! 얼른 데리구 오라구 일렀으니까 머 인전. 집달리 (것질러) 여보시우 그, 정신 빠진 수작 고만저만 해두시우! 박진사 (뻐언했다가, 더럭 성이 나려다가, 얼른 눅이면서) 오온 천 만에! 내가 늙은 사람이 멋허러 젊운 친굴 데리구 실없은 말을 하겠소? 적실히 오기에 온다구 하는 거지! 노형두 아 까 그 전보 보지 않었소? 전보. (둘레둘레) 전보 어떡했느 냐? 일러루 가져오느라! (역정스럽게) 전보 일러루 가져와! 고씨 (둘러보다가) 전보, 여기 없는걸! 박진사 없다니? 어디루 가구 없어? 고씨 아까 참, 당신이 쥐구 사랑으루 나가섰지요? 박진사 오오, 참! 게, 누구 없느냐? 저, 사랑에 나가서. 대원 (마당으로 내려가면서) 전보 가져와요? 박진사 전보 가져오느라! 전보. 대원 (달음질을 쳐서 상수의 차면 밖으로 퇴장) 박진사 어제 전주서 친 전본데, 오늘 적실히 온다는 거야. 오늘, 적실히! (間[간]) 그래 아까 첫새벽에 내 작은자식을, 말 안동시켜서 정거장으루 내보내잖었겠소! 말 안동시켜서. 삼 십릿길을 보행이 어렵기두 하련과, 속히, 한시바삐 당도하 게 하느라구, 응? 대원 (편 전보를 손에 들고, 상수의 차면 밖으로 해서 급히 등 장. 박진사한테 두손 받쳐 전보를 주면서) 할아버지? 박진사 건 무엇이냐? 대원 전보 가져왔어요1 박진사 오오, 참! (전보를 받아 가지고) 자아 펴서 집달리의 얼굴 바투 대주면서) 이게 아니요? 응 전보가 이렇게 왔거든 온 단 전보가! 응? 집달리 (거듭떠보지도 않는다) 박진사 문맥은 무언고오 하면, (풍안을 꺼내 쓰고서 전보를 멀찍이 내대고 보면서) 문맥이 무언고오 하면, (읽는다) 명일, 오 전, 귀가! (고개를 도로 돌리면서) 응? 그 뜻 알지요? 명일 오전 귀가! 이게 오늘 집으루 온다는 그 말이여든! 명일 오 전 귀가. (間[간]) 그애가 거 과히 무식턴 않것만서두, 귀 성이라구 살필성자를 쓰던지이, 귀근이라구 보일근자를 쓰 던지 하는 게 아니라, 돌아갈귀자 귀가라구 했군그래! 시하 예 있는 사람은 귀근이라구 하던지, 귀성이라구 하던지 해 야 호릇스럽잖은 법인데! (間[간]) 이게 분명 아마 거, 무 식한 우체사령자이 잘못 알아 듣구서 이렇게 귀가루 써서 보냈어! 집달리 (방백) 내 온, 기가 맥혀서! 집달리 오 년에 별별 구경 다 했어두, 츰이네! 츰이여! (지성으로) 여보시우 영감님! 인 전 내가 되려 제발 사정 좀 합시다? 박진사 온다구, 이렇게 전보가 오질 않었소? 집달리 전보가 왔으니, 글쎄 어떡헌단 말씀예요? 박진사 지끔 곧 와요! 내 큰자식 박원석이가, 저기 와요! 집달리 오건말건, 내겐 아랑곳없어요! 박진사 돈을 가지구 와서, 이걸, 이 집행맞인걸, 도루 다아 물른다 말이요! 집달리 누가 물르지 말래요? 물르세요! 그렇지만 물를 때 물를값이 라두 인전 제발 저리 좀 비껴나세요! (기색이 강경해진다) 던 지체 할 수가 없어요 단 일각두. 여기 말구두, 오늘 해 전으로 세 군데나 가야 해요! 진정 말이지, 내가 받을 빗이 라면 얼른 이 자리서 탕감해 드리구 말겠소!(가방을 들먹거 린다) 박진사 그러니 잠깐만 더 기둘러 달란 말이구려! 집달리 (인부들더러) 나서! 들. 박진사 (집달리의 팔을 부여잡으면서) 여보시우! 집달리 (뿌리치면서) 못해요! (주춤주춤하는 인부들더러) 무어들 꾸물거리구 있는 거야? 인부 1 예에, 헴. (인부들, 슬금슬금 마당 가운데로 나서고, 경매인 갑·을도 천천히 몸을 꿈지럭거린다. 옆채 옆으로 모여 섰는 여인들, 새로이 당황하여 가벼운 동요가 일고) 박진사 (화가 치미는 것을 누르고) 아, 여보시유! 집달리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다가, 볼품 사납게 지청구를) 못한대 두 이래요! (서류를 훌훌 넘긴다) 박진사 (서류에 손을 얹을 듯) 잠깐만 더! 집달리 (떠밀면서) 왜 이 모양야, 이건! 박진사 (떠밀려나서는, 무춤했다가 그 다음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이윽고 결기 있이) 여보! 집달리 (힐끗 고개를 쳐들었다가 도로 서류를 보면서 무언) 박진사 (한걸음 다가서면서) 그래, 진정이요? 집달리 따잡구 대들면 어쩔 심에요? 박진사 (잔뜩 노리다가) 진정이여! 집달리 그렇단밖으! 박진사 에라끼! 집달리 멋이? 박진사 고현 손 같으니! (홱 몸을 돌이켜, 차면 밖을 향해 쿵쿵 걸 어가면서) 전세상 같었으면, 널 이놈. 집달리 (쫓을 듯) 머야? 박진사 도척이 같은 놈! 집달리 아니, 저 늙은이가 눈에 뵈는 게 없나? 박진사 이놈, (돌아서서) 네가 이놈, 자식을 기르나 보아라! (퇴 장) 집달리 (씨이근씨근, 한참이나 차면을 대고 눈을 흘기다가, 천천히 돌아서서는 괄괄스럽게 손짓 얼러, 인부들더러) 저 대청마 루에 있는 두주허구 베를 먼점 들어내왔! (인부들, 비슬비슬 대청마루로 향해 가고, 최씨 눈물을 씻고, 소저 발을 동동 구르고, 김씨와 오씨는 보다 못해 뒤 울안으로 퇴장하고 고씨, 집달리 앞으로 내려오고) 집달리 (인부들더러) 빨리빨릿! 고씨 여보시요! 이 양반? 집달리 몰라요! 고씨 (한숨) 그까짓 것 세간이 무슨 아까서 그리는 게 아니요! 그보다두 더한 전장두 죄다 떠내려갔을라더냐. 세간 나부랭 이가 값으루야 몇푼어치나 되우? 그렇지만서두, 이걸 모두 끌어내가구, 남의 앞에다 벌려놓구서 네가 사랴 내가 사랴, 암만에 팔아라, 암만에 사거라, 그 짓을 허구 조옴 창피허 며 망신스러우? (間[간]) 죄끔만 더 참어주시요! 존 일 허 느라구. 집달리 (조금 부드럽게) 내가 빗을 받을 사람이라면 죄다 탕감이래 두 해드리구 싶어요! 나두 그렇지만 이게 다아 윗사람 영으 루 하는 노릇이구, 남의 심부름이지, 하나두 머, 내겐 이해 상관 없는 일예요. (인부들, 영치기 베틀을 마당을 떠메고 내려오고, 대원 울면서 상수의 차면 밖으로 쫓아나가고, 고 씨 치맛고름으로 눈물을 씻는다. 인부들, 마당 가운데다가 베틀을 내려놓고는 다시 대청마 루로 올라가고, 경매인 갑·을 베틀을 끼웃끼웃 들여다본 다. 박진사, 대원을 데리고 두 주먹을 불끈, 노기 등등하여 상 수의 차면 밖으로 급히 등장) 박진사 (차면 앞으로 우뚝 멈춰서면서 노기가 와락 더 치밀어 몸을 푸르르, 고함소리로) 그래 이놈들! 느이가 이놈들 정녕코 이 행패를 할테냐? 언감히 내 집에 내정돌입을 해가지구, 이 거조를 할 테냐? (집달리 이외의 일동, 놀라서 박진사를 바라다보고 침을 삼키고. 마악 뒤 주를 떠메고 나오던 인부들, 얼른 도로 내려놓고는 어쩔 줄을 몰라하고.) 집달리 (인부들더러) 머야? 이건! 박진사 (눈을 부릅뜨고) 못한다! (쫓아오면서) 어딜! (문득 사방을 초급히 둘러보면서 무엇인지를 찾다가, 선뜻 하수의 광을 향해 허둥지둥 달려간다) 어딜, 감히! 천하 없어두 못한다! (고씨, 최씨, 소저, 무얼 어쩌느라고 저러나 싶어 걱정스럽게 박진사의 뒤 를 몇 걸음 따르고, 김씨와 오씨, 옆채 사이로 등장하고) 박진사, 광문을 벼락치듯 열어제치고 쫓아들어갔다가 순간 후에 다시 도끼 를 움켜 쥐고 뛰쳐나와 마당 가운데로 베틀을 향해 맥진. 얼굴엔 가득한 살 기. (일동 아연, 여인들의 비명). 집달리, 베틀에서 물씬물씬 뒤로 물러서면서 눈쌀이 패앵팽하여 아랫 입술 을 깨물고. 인부들과 경매인 갑·을, 우우하니 상수의 차면 밖으로 몰려 달 아나고. 여인들의 저마다 “여보오!” 혹은 “아버님!” 하고 부르짖는 비명이 요란한 가운데, 고씨는 박진사의 앞으로 가로막다가 떠밀려서 나가 동그라지고 최씨와 소저는 부여잡으려다가 미급하고서 뒤를 쫓고. 김씨와 오씨와 대원은 마당으로 달려나오고. 박진사 (입가엔 게거품, 눈은 뒤집히고, 미친 듯 베틀을 향해 내달 으면서) 어딜 이놈들! 어딜 감히! (베틀 앞에 다다르자, 이 를 부드득, 도끼를 번쩍 쳐들어 힘껏 내리찍는다) 이래도! (가족들 주춤 멈춰서서는 불의에, 안도 그리고는 통쾌한 얼굴들이고. 경매 인 갑·을과 인부들, 차면 밖에서 끼웃이 들여다보다가 슬금슬금 들어서 고) 박진사 (계속하여 베틀을 함부로 찍으면서) 이래도 이래도 느이가! 이래도 이놈들! 집달리 (고개를 끄덕끄덕하다가, 경매인을 돌려다보고) 주재소! 순 사, 좀! (경매인 갑, 꾸벅하면서, 상수의 차면 밖으로 급히 퇴장하고) 집달리 (물끄러미, 방백) 박적을 쓰구 베탁을 바우겠지? (間[간]) 흥! 사람꺼경 못 성하느라구! 박진사 (자폭적으로 더욱 베틀을 내리찍는다) 이래도! 자, 옜다! 자! 옜다! 자, 옜다! 자아! 옜다! (마지막 모질게 한번 내 리찍고는 도끼를 건 채 얼굴을 번쩍 쳐들면서, 기세 등등하 여 집달리더러 호통을) 이래도! 이놈! 경매해 갈 테거든 경 매해 가거라. 이놈! 해가아, 이놈, (서서히 내리고 있던 막 급히 다 닫긴다) 작자 부기 : 반드시 희곡을 쓰고 싶었다느니보다는 제재가 마침 소설로는 불편한 점이 있기로 전험(前驗)에 따라 역시 이 형식을 빌린 것이다. <人文評論[인문평론] 1940년 10월호 ; 祭響[제향]날,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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